병리 판독지를 처음 받아 든 날, 낯선 약어와 숫자들 앞에서 오히려 아무것도 묻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Ki-67이 몇 퍼센트인지, ER과 PR은 양성인지 음성인지, HER2 점수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담당 선생님은 다음 진료 때 차근히 설명해 주겠다고 했지만, 그 사이의 시간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아내가 유방암 진단을 받은 뒤, 약사라는 직업 덕분에 논문을 읽는 일 자체는 낯설지 않았지만, 정작 '우리 가족의 판독지'를 마주하니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 사이의 거리가 생각보다 컸다. 그래서 해외 주재 생활 중 짬을 내어, 판독지에 등장하는 지표들을 다룬 원저 논문을 하나씩 찾아 읽었다. 이 글은 그 과정에서 정리한 내용이다.
미리 밝혀두고 싶은 것은, 이 글이 어떤 결과가 좋고 나쁘다는 것을 판정하려는 글이 아니라는 점이다. 같은 숫자라도 환자마다, 검사 기관마다 해석의 맥락이 달라질 수 있고, 최종적인 판단은 담당 의료진의 몫이다. 다만 진료실의 짧은 시간 안에 궁금한 것을 놓치지 않고 물어볼 수 있도록, 판독지에 자주 등장하는 지표들이 각각 무엇을 의미하는지 미리 정리해 두고 싶었다.
Ki-67 증식지수, 숫자 하나에 담긴 의미
Ki-67은 세포가 분열하고 있는 정도, 즉 종양의 증식 속도를 나타내는 지표다. 병리 보고서에는 흔히 '몇 퍼센트'라는 형태로 기재되는데, 이는 검사한 종양세포 가운데 Ki-67 단백질에 양성으로 염색된 세포의 비율을 뜻한다. 이 수치가 높을수록 세포가 더 활발하게 분열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영국의 130개 병원이 참여한 POETIC 3상 임상시험은 폐경 후 호르몬수용체 양성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수술 전후 짧은 기간 아로마타제 억제제를 투여하면서 Ki-67 값의 변화를 추적했다.[1] 수술 전 기저 Ki-67과 약 2주 뒤 재측정한 Ki-67을 함께 살펴본 결과, 두 시점 모두 낮은 수치를 보인 환자군은 예후가 좋았던 반면, 두 시점 모두 높은 수치를 유지한 환자군은 재발 위험이 더 높게 나타났다.[1] 이는 Ki-67 하나의 숫자보다, 치료 전후의 '변화 양상'이 예후를 가늠하는 데 추가 정보를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1]
다만 연구진도 밝혔듯, 이 결과가 수술 전 짧은 기간의 내분비요법 자체에 치료 효과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1] 어디까지나 증식이 활발한 호르몬수용체 양성 종양에서, 내분비요법에 대한 반응성을 미리 가늠해보는 정보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의미다.[1]
같은 조직에서도 다르게 읽힐 수 있는 이유
Ki-67 수치를 접하면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점은, '몇 퍼센트 이상이면 높은 것'이라는 확립된 기준이 아직 없다는 사실이었다. 독일의 한 대학병원에서 2013~2015년 조기 유방암으로 치료받은 환자 917명의 자료를 후향적으로 분석한 연구에서는, 전체 환자의 64.9%가 Ki-67 20% 미만, 35.1%가 20% 이상으로 나타났고 중앙값은 10%였다(범위 1~90%).[5] 연구진은 종양의 생물학적 특성이 더 공격적인 하위군일수록 Ki-67 중앙값도 높게 나타났다고 보고하면서도, 낮음과 높음을 가르는 표준 기준값 자체는 여전히 확립되어 있지 않다고 밝혔다.[5]
또 하나 알아두면 좋은 점은, 같은 조직 슬라이드를 두고도 판독 방식에 따라 수치가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한 연구팀이 유방암 조직 997건을 대상으로 병리의사의 육안 판독과 자동화된 디지털 영상분석 결과를 비교한 연구에서는, 두 방법 사이의 상관관계는 매우 높았지만(급내상관계수 0.982), 5%포인트 이상 차이가 난 175건을 따로 분석했더니 종양 내 불균질성(56.0%), 육안 판독 과정의 해석 오차(18.3%), 종양세포 오인(14.9%), 염색이나 슬라이드 상태 문제(9.1%) 등이 원인으로 확인되었다.[6] 특히 Ki-67 값이 10~20% 구간에 있을 때 두 방법 사이의 불일치가 더 자주 나타났다.[6] 경계선에 가까운 수치일수록 판독 방법에 따라 값이 조금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이므로, 애매한 구간의 수치라면 담당 병리의사에게 재확인을 요청해 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호르몬수용체·HER2·조직등급이 함께 말해주는 것
판독지에는 Ki-67 외에도 에스트로겐수용체(ER), 프로게스테론수용체(PR), HER2, 그리고 조직학적 등급이 함께 기재된다. 이 항목들은 서로 다른 지표이지만, 임상에서는 종종 종합적으로 묶어 예후를 가늠하는 데 쓰인다.
인도의 한 3차 병원에서 유방암 환자 14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는, 종양 크기·조직등급·림프절 전이 여부를 종합해 계산하는 노팅엄 예후지수(Nottingham Prognostic Index, NPI)와 함께 ER, PR, HER2, Ki-67 면역조직화학 결과를 나란히 비교했다.[3] 이처럼 여러 지표를 한 환자의 조직에서 함께 살펴보는 이유는, 어느 한 지표만으로는 종양의 성질을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3] 같은 조직등급이라도 호르몬수용체 상태나 Ki-67 수치에 따라 임상적 의미가 달라질 수 있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미세혈관밀도라는 낯선 지표
판독지에 자주 등장하지는 않지만, 종양이 스스로 혈관을 만들어내는 능력, 즉 신생혈관형성을 가늠하는 미세혈관밀도(microvessel density, MVD)라는 지표도 있다. 종양세포가 자라기 위해서는 산소와 영양을 공급받을 혈관이 필요한데, CD34라는 표지자로 염색해 이 미세혈관의 밀도를 세어보는 방식이다.
앞서 언급한 인도 143명 환자 연구는 MVD를, 오래전부터 전통적인 지표보다 더 정밀하게 재발 위험이 높은 환자를 가려내는 데 쓰여 온 종양혈관형성의 대리 지표로 소개하며, 이를 노팅엄 예후지수 및 다른 통상적인 조직병리학적 지표들과 함께 비교했다.[3] 다만 MVD는 아직 일상적인 병리 판독지에 표준으로 포함되는 항목은 아니며, 연구 목적으로 더 자주 쓰이는 지표라는 점은 참고할 필요가 있다.
PET-CT의 SUVmax, 대사 활동을 들여다보다
수술 전 병기 설정을 위해 PET-CT 검사를 받으면 SUVmax(최대 표준섭취계수)라는 값이 함께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는 종양이 포도당을 얼마나 활발하게 흡수하는지를 나타내는 수치로, 대사가 활발한 조직일수록 값이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국내외 여러 기관에서 SUVmax와 종양의 조직학적 특징 사이의 관계를 살펴본 연구가 이어져 왔는데, 한 3차 병원이 유방암 환자들의 PET-CT 자료를 후향적으로 분석해 SUVmax와 여러 종양 특성 사이의 관계를 정리한 연구도 그 가운데 하나다.[4] 이런 연구들은 공통적으로 SUVmax가 단순히 종양의 유무를 넘어, 종양의 생물학적 성질에 관한 부가 정보를 담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4] 다만 SUVmax 하나만으로 예후를 단정할 수는 없고, 다른 조직검사 결과와 함께 해석되는 보조 지표로 이해하는 편이 맞다.
MRI 확산강조영상의 ADC 값이 알려주는 것
유방 MRI를 찍으면 확산강조영상(diffusion-weighted imaging)에서 얻어지는 겉보기확산계수(apparent diffusion coefficient, ADC) 값이 판독지에 함께 실리는 경우가 있다. 물 분자가 조직 안에서 얼마나 자유롭게 움직이는지를 나타내는 값으로, 세포가 빽빽하게 들어찬 조직일수록 물 분자의 움직임이 제한되어 ADC 값이 낮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국내 연구진이 3.0테슬라 MRI로 촬영한 침윤성 유관암 173건의 전체 종양 부피에서 ADC 히스토그램(최소값, 10백분위수, 평균, 중앙값, 90백분위수, 최대값)을 계산해 여러 예후인자 및 아형과의 관계를 살펴본 연구가 있다.[7] 이 연구에서는 ADC 최소값을 제외한 대부분의 히스토그램 지표가 예후인자 및 아형과 유의한 관련을 보였고, 특히 HER2 양성인 종양에서는 ADC 값이 높게, Ki-67 지수가 높은 종양에서는 ADC 값이 낮게 나타나는 경향이 확인되었다.[7] MRI에서 얻어지는 이 수치도 조직검사 결과와 방향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질 수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MRI 결과가 조직검사를 대신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방법으로 발견됐는지도 무관하지 않다
진단 초기에 함께 짚어볼 만한 부분은, 유방암이 어떤 검진 방법으로 발견되었는지가 발견된 암의 특성과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이탈리아의 MAITA 컨소시엄은 여러 지역에서 진행된 무작위배정 임상시험 자료를 모아, 디지털유방촬영(2D 매머모그래피)과 디지털유방단층촬영(tomosynthesis)으로 각각 발견되거나 놓친 암의 조직학적 아형과 수용체 특성을 비교했다.[2] 이 통합분석에서 첫 회 검진 시점에는 유방단층촬영을 병행한 그룹에서 유방촬영단독 그룹보다 더 많은 암이 발견되었으며, 그 가운데는 예후가 좋은 유형의 암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2]
이 결과가 뜻하는 바는, 검진 방법의 민감도 차이가 단순히 '더 빨리 찾느냐 늦게 찾느냐'의 문제만이 아니라, 어떤 생물학적 특성을 지닌 암을 상대적으로 더 잘 찾아내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2] 그러니 처음 발견된 경위—정기검진에서 우연히 발견됐는지, 만져지는 멍울을 계기로 찾아냈는지—를 담당 의료진과 함께 되짚어보는 것도, 판독지의 다른 숫자들을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될 수 있다.
자주 묻는 질문
Ki-67 수치가 높으면 무조건 예후가 나쁜 건가요?
Ki-67이 높다는 것은 세포 증식이 활발하다는 뜻이지만, 그 자체만으로 예후를 단정할 수는 없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Ki-67은 호르몬수용체, HER2, 조직등급 등 다른 지표와 함께 해석되며, 같은 수치라도 다른 지표들의 조합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정확한 해석은 담당 의료진과의 상담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병원마다 Ki-67 수치가 다르게 나올 수 있나요?
그럴 수 있다. 판독 방식(육안 판독 대 디지털 영상분석)에 따라, 특히 경계선에 가까운 수치일수록 결과가 다소 달라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표준화된 기준값이 아직 확립되지 않은 것도 기관 간 차이가 생기는 이유 중 하나다.
이런 지표들만 보면 치료 방향을 알 수 있나요?
이 글에서 다룬 지표들은 어디까지나 종양의 생물학적 성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일 뿐, 특정 치료를 권하거나 배제하는 근거로 단독 사용되지는 않는다. 치료 방향은 이 지표들을 포함한 여러 검사 결과를 종합해 담당 의료진이 판단할 문제다.
PET-CT나 MRI 수치만으로 조직검사를 대신할 수 있나요?
아니다. PET-CT의 SUVmax나 MRI의 ADC 값은 조직검사 결과와 어느 정도 방향이 일치하는 경향이 보고되고 있지만, 이는 보조적인 정보이며 확진과 아형 분류는 여전히 조직검사를 통해 이루어진다.
참고 자료
- Smith I, et al. Long-term outcome and prognostic value of Ki67 after perioperative endocrine therapy in postmenopausal women with hormone-sensitive early breast cancer (POETIC): an open-label, multicentre, parallel-group, randomised, phase 3 trial. Lancet Oncol. 2020. doi:10.1016/S1470-2045(20)30458-7. 원문 보기
- Mancuso P, et al. Histological subtype and receptor characteristics of cancers detected or missed by digital mammography and tomosynthesis: Results from MAITA randomized trials. Eur J Cancer. 2026. doi:10.1016/j.ejca.2026.116687. 원문 보기
- Goyal AV, et al. Correlation of microvessel density with histopathological parameters of carcinoma breast. Indian J Med Res. 2023. doi:10.4103/ijmr.ijmr_1588_22. 원문 보기
- Dubey IP, et al. Tumor characteristics and metabolic quantification in carcinoma breast: An institutional experience. Indian J Cancer. 2017. doi:10.4103/ijc.IJC_121_17. 원문 보기
- de Gregorio A, et al. Ki67 as Proliferative Marker in Patients with Early Breast Cancer and Its Association with Clinicopathological Factors. Oncology. 2021. doi:10.1159/000517490. 원문 보기
- Kwon AY, et al. Practical approaches to automated digital image analysis of Ki-67 labeling index in 997 breast carcinomas and causes of discordance with visual assessment. PLoS One. 2019. doi:10.1371/journal.pone.0212309. 원문 보기
- Kim EJ, et al. Histogram analysis of apparent diffusion coefficient at 3.0t: Correlation with prognostic factors and subtypes of invasive ductal carcinoma. J Magn Reson Imaging. 2015. doi:10.1002/jmri.24934. 원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