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분비 저항성이 생긴 것 같습니다.” 정기 검사 결과를 보던 담당 교수님이 이 말을 꺼냈을 때, 저는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아내는 호르몬수용체 양성 유방암으로 표적치료제와 호르몬차단제를 함께 쓰고 있었고, 그동안은 수치가 잘 눌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같은 약이 예전만큼 듣지 않는다는 겁니다.
진료실에서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짧은 설명을 듣고 나면 집에 와서야 궁금한 것들이 떠오릅니다. 왜 갑자기 약이 안 듣게 됐는지, 검사는 무엇을 하는지, 다음 선택지는 무엇인지. 이 글은 제가 그 질문들의 답을 찾으려고 최근 발표된 유방암 내분비 저항성 관련 1차 문헌들을 직접 찾아 읽고 정리한 기록입니다.
저는 의료인이 아니라 약사 자격은 있지만 임상 현장과는 거리가 있는 보호자이고, 지금은 해외 주재원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진료 지침이 아니라, 다음 진료 때 담당 의료진과 더 구체적인 대화를 나누기 위한 예습에 가깝습니다. 실제 치료 방향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담당 의료진의 몫입니다.
왜 잘 듣던 호르몬차단제가 멈추는가
호르몬수용체 양성(HR+) 유방암은 에스트로겐수용체(ER)가 암세포 증식 신호를 계속 켜 주는 유형입니다. 타목시펜이나 아로마타제억제제 같은 호르몬차단제는 이 신호를 끊어서 암세포 증식을 억제합니다. 문제는 치료를 오래 받은 종양 세포 일부에서 ER을 만드는 유전자, 즉 ESR1 자체에 변이가 생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2015년 Jeselsohn 등의 리뷰에 따르면, 전이성 ER 양성 유방암 환자의 약 20%에서 이러한 획득성 ESR1 유전자 변이가 확인되었고, 이 변이는 리간드(호르몬) 없이도 ER이 계속 활성화되도록 만들어 종양 성장을 촉진하고 내분비 치료에 부분적으로 저항하게 만듭니다. 같은 리뷰는 원발 유방암 환자의 약 25%, 그리고 전이가 생긴 환자 대부분이 결국 내분비 저항성을 겪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7]
다만 이 20%라는 수치는 2015년 자료이고, 치료 환경이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2025년 Valenza와 Curigliano의 리뷰는 CDK4/6 억제제와 아로마타제억제제를 1차로 병용 치료받은 ER 양성·HER2 음성 전이성 유방암 환자의 약 40%에서 획득성 ESR1 변이가 발생한다고 보고합니다. [4] 두 수치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 조사 대상 치료 조합과 시기가 다르기 때문인데,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것은 ‘치료를 오래 받을수록 ESR1 변이가 저항성의 주요 경로 중 하나로 떠오른다’는 흐름입니다.
저항성을 어떻게 확인하는가 — 액체생검이라는 도구
ESR1 변이는 조직검사보다 혈액검사(액체생검, 순환종양DNA 분석)로 더 자주 확인됩니다. Carausu 등의 2019년 리뷰는 ESR1 변이 검사가 앞으로 호르몬수용체 양성 유방암, 특히 전이성 단계에서 예후 및 치료 반응 예측 지표로 임상에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3] 같은 리뷰는 다만 이 변이가 조직검사와 액체생검 중 어떤 방법으로 확인했는지, 어느 병기에서 확인했는지에 따라 검출율과 임상적 의미가 달라진다는 점도 짚고 있습니다. [3] 즉 “ESR1 변이가 있다/없다”는 결과 자체보다, 언제·어떤 방식으로 검사했는지가 해석에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CDK4/6 억제제 이후에도 선택지는 하나가 아니다
1차 치료로 흔히 쓰이는 CDK4/6 억제제와 내분비치료 병용 요법에 저항성이 생겼을 때, 그다음 단계는 정해진 하나의 길이 아닙니다. 2025년 Sahin 등의 리뷰는 CDK4/6 억제제 진행 이후의 선택지로 새로운 경구 SERD 계열 약물, PI3K/AKT/mTOR 경로 억제제(알펠리십, 카피바서팁 등), 항체-약물 접합체(ADC), 그리고 일부 환자에서는 CDK4/6 억제제를 다른 조합으로 유지하는 전략까지 폭넓게 검토되고 있다고 정리합니다. [2] 이 리뷰가 강조하는 것은 ESR1·PIK3CA 변이 여부, HER2-low 여부, 종양의 분자 아형 같은 정보를 확인하는 분자 프로파일링이 다음 치료를 정하는 데 핵심이라는 점입니다. [2]
실제 임상시험 데이터도 이 방향을 뒷받침합니다. 아베마시클립과 풀베스트란트 병용을 평가한 MONARCH 2 연구의 순환종양DNA 분석(Tolaney 등, 2022)에서는, PIK3CA 야생형 환자군에서 무진행생존기간 중앙값이 위약군 대비 16.9개월 대 12.3개월(위험비 0.51), PIK3CA 변이형 환자군에서는 17.1개월 대 5.7개월(위험비 0.53)로, 변이 여부와 관계없이 병용요법의 이득이 확인되었습니다. [6] 이런 수치는 이 임상시험에 참여한 환자군 전체의 평균적 결과이지, 특정 개인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예측치는 아닙니다.
새로운 경구 SERD, 무엇이 달라지는가
ESR1 변이로 인한 저항성을 정면으로 다루기 위해 개발된 약물군이 선택적에스트로겐수용체분해제(SERD)입니다. 2024년 Gheysen 등의 종합 리뷰는 최초의 SERD인 풀베스트란트가 근육주사로 투여되어야 하고 효능도 제한적이었던 점이 더 강력한 경구용 SERD 개발의 배경이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1] 엘라세스트란트, 카미제스트란트, 기레데스트란트, 임루네스트란트 등 여러 경구 SERD가 그 결과물입니다. 다만 같은 리뷰는 명확히 선을 긋습니다. 3상 임상시험 부재, 작은 하위그룹 규모 같은 한계로 인해 호르몬수용체 양성 유방암 치료 지형에서 경구 SERD가 정확히 어떤 위치를 차지할지는 아직 상당히 불확실한 상태이며, 향후 연구에서 여러 경구 SERD 간의 직접 비교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1]
차세대 경구 SERD 중 하나인 카미제스트란트를 다룬 2023년 전임상 연구(Lawson 등)는 이 약물이 생체 내 실험에서 풀베스트란트보다 우수한 활성 프로필을 보였고, ESR1 변이·내분비저항·CDK4/6 억제제 저항 모델에서 CDK4/6 억제제 및 PI3K/AKT/mTOR 억제제와 병용했을 때 폭넓은 효능을 나타냈다고 보고합니다. [8] 이 결과는 세포주와 동물 모델(전임상 단계) 실험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 결과와는 다른 층위의 근거입니다. 2025년 Sahin 등의 별도 리뷰 역시 CDK4/6 억제제 진행 이후 경구 SERD들이 유망한 치료 옵션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연구마다 설계·대상군·결과가 달라 근거를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5]
ESR1 검사 결과 하나로 모든 게 설명되지는 않는다
여기서 조심할 부분이 있습니다. ESR1 변이 검사 결과를 “있다=나쁘다, 없다=괜찮다”로 단순하게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문헌들이 보여주는 그림은 더 복잡합니다. Gheysen 등의 리뷰가 지적하듯 현재로서는 경구 SERD의 정확한 역할 자체가 불확실하고, [1] Carausu 등의 리뷰 역시 검사 방법과 시점에 따라 결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3] “도움이 될 수 있다”와 “효과가 입증되었다”는 다른 말입니다. 지금 시점의 근거로는, ESR1 변이 검사가 치료 방향을 정하는 데 참고할 수 있는 정보 중 하나이지, 그 자체로 결론을 내려 주는 지표는 아니라고 보는 편이 안전합니다.
진료실에서 무엇을 물어볼 수 있을까
이 문헌들을 정리하면서 다음 진료 때 담당 의료진에게 물어볼 목록을 만들어 봤습니다. ESR1·PIK3CA 변이 검사를 이미 했는지, 했다면 조직검사였는지 액체생검이었는지. 지금 고려 중인 다음 단계 치료가 경구 SERD 계열인지, PI3K/AKT/mTOR 경로 억제제인지, 다른 조합인지, 그리고 그 근거가 된 연구는 어떤 환자군을 대상으로 한 것인지. 이런 질문들은 특정 약을 요청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의료진이 세운 계획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것입니다. 최종 결정은 여전히 개별 환자의 상태를 가장 잘 아는 담당 의료진의 몫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ESR1 변이가 나왔다는 건 치료가 실패했다는 뜻인가요?
A. 아닙니다. ESR1 변이는 내분비 저항성이 생기는 여러 경로 중 하나이며, 변이가 확인됐다고 해서 모든 내분비치료가 소용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변이 확인은 다음 치료 전략(예: 경구 SERD 계열 검토)을 논의하는 출발점이 됩니다.[7][4]
Q. 액체생검은 아무 때나 하면 되나요?
A. 검사 시점과 방법에 따라 결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문헌에서 지적되고 있습니다. 검사 시점은 담당 의료진이 치료 경과와 검사 목적에 맞춰 정하는 것이 안전합니다.[3]
Q. 여러 경구 SERD 중 어떤 게 제일 좋은가요?
A. 현재까지 발표된 리뷰들은 경구 SERD 간의 직접적인 비교 임상시험이 아직 부족하다고 밝히고 있어, ‘가장 좋은 약’을 일반적으로 말하기는 이릅니다. 이는 개별 환자의 변이 상태와 이전 치료 이력을 함께 고려해 판단할 문제입니다.[1][5]
Q. CDK4/6 억제제에 내성이 생기면 치료를 포기해야 하나요?
A. 아닙니다. 경구 SERD, PI3K/AKT/mTOR 경로 억제제, 항체-약물 접합체, 분자 프로파일링에 기반한 조합 등 검토 가능한 후속 옵션이 여러 갈래로 존재합니다. 다음 단계는 환자의 변이 프로파일과 이전 반응을 바탕으로 정해집니다.[2]
참고 자료
- Gheysen M, Punie K, Wildiers H, Neven P. Oral SERDs changing the scenery in hormone receptor positive breast cancer, a comprehensive review. Cancer Treat Rev. 2024;130:102825. doi:10.1016/j.ctrv.2024.102825. PubMed
- Sahin TK, Rizzo A, Guven DC, Aksoy S. Post-progression treatment options after CDK4/6 inhibitors in hormone receptor-positive, HER2-negative metastatic breast cancer. Cancer Treat Rev. 2025;136:102924. doi:10.1016/j.ctrv.2025.102924. PubMed
- Carausu M, Bidard FC, Callens C, Melaabi S, Jeannot E, Pierga JY, et al. ESR1 mutations: a new biomarker in breast cancer. Expert Rev Mol Diagn. 2019;19(7):599-611. doi:10.1080/14737159.2019.1631799. PubMed
- Valenza C, Curigliano G. Positioning oral selective estrogen receptor degraders in patients with metastatic breast cancer. Eur J Cancer. 2025;228:115739. doi:10.1016/j.ejca.2025.115739. PubMed
- Sahin TK, et al. Oral selective estrogen receptor degraders (SERDs) in hormone receptor-positive HER2-negative metastatic breast cancer after progression with CDK4/6 inhibitors. Expert Rev Anticancer Ther. 2025;25(5):471-484. doi:10.1080/14737140.2025.2479604. PubMed
- Tolaney SM, Toi M, Neven P, Sohn J, Grischke EM, Llombart-Cussac A, et al. Clinical Significance of PIK3CA and ESR1 Mutations in Circulating Tumor DNA: Analysis from the MONARCH 2 Study of Abemaciclib plus Fulvestrant. Clin Cancer Res. 2022;28(8):1500-1506. doi:10.1158/1078-0432.CCR-21-3276. PubMed
- Jeselsohn R, Buchwalter G, De Angelis C, Brown M, Schiff R. ESR1 mutations—a mechanism for acquired endocrine resistance in breast cancer. Nat Rev Clin Oncol. 2015;12(10):573-583. doi:10.1038/nrclinonc.2015.117. PubMed
- Lawson M, Cureton N, Ros S, Cheraghchi-Bashi A, Urosevic J, D'Arcy S, et al. The Next-Generation Oral Selective Estrogen Receptor Degrader Camizestrant (AZD9833) Suppresses ER+ Breast Cancer Growth and Overcomes Endocrine and CDK4/6 Inhibitor Resistance. Cancer Res. 2023;83(23):3989-4004. doi:10.1158/0008-5472.CAN-23-0694. PubM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