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중 입맛 잃은 아내를 위한 집밥 실전기
정성껏 차린 밥상을 몇 번이나 물린 아내와, 그 앞에서 무너지던 저. 항암 시기 부엌에서 울고 배운 이야기를 그대로 적습니다.
선항암 시기, 입맛을 완전히 잃은 아내를 위해 매일 부엌에 섰던 반년의 기록입니다.
차려도 물리고, 물려도 다시 차리던 날들, 냄새와의 싸움, 성공한 메뉴와 실패한 메뉴를 그대로 담았습니다.
정답을 알려 드리는 글이 아니라, 같은 부엌에 선 누군가의 막막함을 조금 덜어 드리려는 기록입니다.
- 물린 밥상 앞에서
- 부엌에 서게 된 사정
- 차리고 물리고, 다시 차리던 날들
- 가장 힘들었던 것 — 정성이 거절당할 때
- 실제로 통했던 것들
- 지금 돌아보면
- 같은 자리에 있는 분께
물린 밥상 앞에서
그날 저는 아침부터 죽을 끓였습니다. 전복을 잘게 다지고, 불린 쌀을 참기름에 볶다가, 약한 불에서 오래 저었습니다. 아내가 그나마 먹을 만하다고 했던 메뉴여서, 저는 정성을 다했습니다. 한 그릇을 곱게 담아 아내 앞에 놓았습니다. 아내는 숟가락을 들었다가, 한 술을 뜨고는 이내 내려놓았습니다. "미안해. 오늘은 도저히 못 먹겠어."
저는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겉으로는. 그러나 부엌으로 돌아와 식은 죽을 개수대에 붓는데, 손이 조금 떨렸습니다. 두 시간을 들여 끓인 죽이 개수대 배수구로 흘러 들어가는 걸 보며, 저는 이상하게 서러웠습니다. 아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 순간의 무력함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항암 중인 사람에게 밥을 먹인다는 건,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눈앞에서 점점 야위어 가는데, 좋은 걸 먹여 힘을 내게 하고 싶은데, 정작 그 사람은 한 술도 넘기기 힘들어합니다. 그 간극 앞에서 보호자는 매일 조금씩 무너집니다.
그 무렵 저는 냉장고 문을 여닫는 일이 하루에도 수십 번이었습니다. 뭐라도 아내가 먹을 만한 게 없을까 하고. 장을 볼 때도 마트를 몇 바퀴씩 돌았습니다. 이건 냄새가 강해서 안 되고, 저건 너무 자극적이라 안 되고, 그러다 보면 카트에 담을 게 마땅치 않았습니다. 결국 두부 한 모, 달걀 한 판, 부드러운 과일 몇 개를 들고 돌아오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 단출한 장바구니가 그 시기 우리 집의 형편이었습니다. 계산대 앞에서 다른 사람들의 카트를 보면, 고기며 반찬거리가 가득했습니다. 그 앞에서 제 초라한 장바구니를 내려다보며, 저는 문득 코끝이 시큰했습니다.
이 글은 그 부엌에서의 반년에 대한 기록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정답이 아니라, 차리고 물리고 다시 차리기를 반복하며 제가 울고 배운 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부엌에 서게 된 사정
아내가 선항암을 시작하면서, 우리 집 부엌의 주인은 자연스럽게 저로 바뀌었습니다. 원래 요리는 아내의 몫이었습니다. 저는 라면이나 겨우 끓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항암을 시작한 아내는 요리는커녕 부엌 냄새조차 견디기 힘들어했습니다. 누군가는 밥을 해야 했고, 그 사람은 저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엔 막막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도 몰랐습니다. 인터넷에서 '항암 환자 식단'을 검색하면 정보가 쏟아졌지만, 정작 우리 아내에게 맞는 건 그중 얼마 없었습니다. 사람마다 몸 상태가 다르고, 입맛이 다르고, 그날그날 컨디션이 달랐으니까요. 저는 책이나 검색이 아니라, 아내를 관찰하며 하나씩 배워야 했습니다.
서툰 손이 안쓰러웠는지, 아내는 힘없는 목소리로 조리법을 알려 주기도 했습니다. 소파에 누운 채로 "쌀은 좀 더 불려", "그건 약한 불에서 오래 저어야 해" 하고. 저는 앞치마를 두르고 그 말을 받아 적듯 따랐습니다. 평생 부엌을 지켜 온 아내가, 이제는 누워서 남편의 서툰 요리를 지도하는 그 풍경이 저에게는 뭉클하면서도 서글펐습니다. 그렇게 아내의 부엌을, 저는 어설프게나마 물려받았습니다.
항암은 입맛을 여러 방식으로 무너뜨렸습니다. 어떤 날은 아예 아무것도 못 먹었고, 어떤 날은 특정 냄새만 맡아도 헛구역질을 했습니다. 늘 좋아하던 음식이 갑자기 싫어지기도 하고, 반대로 평소 안 먹던 게 당기기도 했습니다. 입안이 헐어 뜨겁거나 자극적인 걸 못 먹는 시기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 변덕스러운 몸의 신호를 매일 새로 읽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부엌 일은 요리 실력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건 관찰과 인내의 문제였습니다. 오늘 아내의 몸이 무엇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살피고, 안 되면 물러섰다가, 다시 다른 걸 시도하는 것. 저는 요리사가 아니라, 매일 아내의 입맛을 탐색하는 관찰자가 되어 갔습니다.
차리고 물리고, 다시 차리던 날들
가장 먼저 부딪힌 벽은 냄새였습니다. 항암 중 아내는 후각이 극도로 예민해졌습니다. 제가 부엌에서 뭘 볶거나 끓이면, 그 냄새가 집 안에 퍼지는 것만으로도 아내는 속이 뒤집힌다고 했습니다. 특히 기름 냄새, 고기 익는 냄새에 민감했습니다. 저는 요리할 때 환풍기를 최대로 틀고, 창문을 다 열고, 방문을 닫아 냄새가 아내 방으로 가지 않게 했습니다.
그래서 조리법 자체를 바꿔야 했습니다. 굽거나 튀기는 것보다 삶고 데치는 쪽으로, 강한 양념보다 담백한 쪽으로. 냄새가 적게 나는 조리를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슴슴한 음식이 많아졌습니다. 어떤 날은 아예 찬 음식이 나았습니다. 뜨거운 음식에서 올라오는 김과 냄새조차 힘들어하는 날엔, 식혀서 상온으로 내는 게 도움이 됐습니다.
온도와 형태도 중요했습니다. 입안이 헐었을 때는 부드럽고 미지근한 게 좋았고, 삼키기 힘들 때는 죽이나 미음처럼 넘기기 쉬운 형태가 나았습니다. 저는 같은 재료라도 그날 아내의 상태에 따라 죽으로, 국으로, 또는 잘게 다진 반찬으로 형태를 바꿨습니다. 아내가 "오늘은 씹는 게 힘들어" 하면 미음을, "뭔가 시원한 게 당겨" 하면 차가운 것을 준비했습니다.
양은 늘 적게, 자주가 원칙이 됐습니다. 한 끼에 많이 차려 놓으면 아내는 그 양에 질려 아예 손을 못 댔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조금씩, 예쁜 작은 그릇에 담아냈습니다. 세 숟갈이라도 먹으면 성공이라 여겼습니다. 부담을 줄이니 오히려 조금씩 더 먹었습니다. 큰 그릇 가득한 밥은 아내에게 격려가 아니라 압박이었다는 걸, 저는 여러 번 실패하고서야 알았습니다.
그릇을 고르는 일에도 마음을 썼습니다. 큰 대접에 담으면 그 양만 보고도 아내가 지쳤기에, 저는 작고 예쁜 종지 같은 그릇을 여럿 사 두고 조금씩 담았습니다. 병원 밥 같은 느낌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식욕이 나는 색과 모양으로. 알록달록한 과일 몇 조각을 곁들이거나, 그릇 옆에 작은 꽃 한 송이를 놓은 날도 있었습니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눈으로 먼저 먹는다는 말이 항암 중에는 더 맞았습니다.
새콤하거나 개운한 맛이 통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입맛이 없을 때 아내는 슴슴한 것보다 살짝 새콤한 것에 반응했습니다. 그럴 때 저는 부드러운 유제품에 과일을 조금 곁들이거나, 새콤한 무침 같은 걸 냈습니다. 담백하게 익힌 양배추를 부드럽게 쪄서 낸 날, 아내가 평소보다 잘 먹어서 저 혼자 속으로 환호한 적도 있습니다. 부드럽고 소화가 잘돼서 그런지, 양배추는 그나마 실패가 적은 재료였습니다.
단백질을 어떻게든 넣는 것도 제 숙제였습니다. 고기 냄새를 힘들어하니 고기로 단백질을 채우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드러운 두부, 달걀찜, 그리고 그릭요거트 같은 걸 자주 활용했습니다. 특히 그릭요거트는 새콤하면서 부드러워, 입맛 없는 날에도 몇 술은 넘길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부드러운 과일을 으깨 섞으면 아내가 그나마 반겼습니다. 저는 그렇게, 넘길 수 있는 형태로 영양을 몰래 실어 나르는 법을 익혔습니다.
물도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아내는 입맛만 없는 게 아니라 물조차 잘 넘기지 못하는 날이 있었습니다. 그냥 물이 밍밍해서 싫다고 할 때는, 살짝 시원하게 하거나 레몬 한 조각을 띄워 향을 냈습니다. 따뜻한 보리차가 나은 날도 있었습니다. 수분이 부족하면 더 힘들어진다고 해서, 저는 아내 눈에 잘 띄는 곳에 늘 마실 것을 놓아 두고 조금씩 권했습니다.
그럼에도 실패한 날이 훨씬 많았습니다. 어제 잘 먹던 걸 오늘은 거부하고, 애써 준비한 걸 냄새만 맡고 밀어냈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좌절했지만, 좌절을 아내에게 들키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물린 음식을 조용히 치우고, 다시 다른 걸 궁리했습니다. 그 반복이 반년 동안 매일 이어졌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것 — 정성이 거절당할 때
부엌 일에서 가장 힘든 건 육체적 수고가 아니었습니다. 정성을 다한 음식이 거절당하는 것, 그 마음의 자리였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두 시간을 들여 만든 것이 한 술 만에 물러날 때, 머리로는 아내 탓이 아니라는 걸 알아도 가슴은 서늘하게 내려앉았습니다.
더 힘든 건, 그 서운함을 느끼는 저 자신이 미웠다는 것입니다. 아픈 사람이 못 먹는 걸 두고 서운해하다니. 아내는 먹고 싶어도 못 먹는 건데, 나는 왜 내 정성만 생각하나. 그런 자책이 밀려왔습니다. 물린 밥상 앞에서 저는 아내에게 미안하고, 동시에 그런 제 마음에도 미안했습니다.
어느 날은 결국 마음이 새어 나왔습니다. 아내가 또 음식을 물리자, 저도 모르게 "조금만이라도 먹어 보지" 하는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말하고 바로 후회했습니다. 아내의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나도 먹고 싶어. 정말 먹고 싶은데 안 넘어가는 걸 어떡해." 그 말에 저는 아무 대꾸도 못 했습니다. 제 서운함이 아내에게 죄책감을 얹었다는 걸 깨달았으니까요. 그날 밤 저는 부엌에서 오래 혼자 서 있었습니다.
그 눈물을 본 뒤로 저는 한 가지를 분명히 알았습니다. 아내에게 못 먹는 건 게으름이나 투정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고통이라는 걸. 먹고 싶은데 몸이 받아 주지 않는 그 답답함을, 아내는 매 끼니 겪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제 정성의 무게만 생각했지, 못 먹는 아내의 괴로움은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던 겁니다. 밥을 못 먹는 사람 앞에서 가장 속상한 건 결국 그 사람 자신이라는 걸, 저는 그제야 제대로 이해했습니다. 그 뒤로 저는 아내가 음식을 물릴 때, 서운함 대신 "괜찮아, 이따 당길 때 말해" 하고 담담히 치우는 법을 익혔습니다.
그 일 이후 저는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음식은 아내를 위한 것이지, 제 정성을 확인받기 위한 게 아니라고. 아내가 못 먹는 건 실패가 아니라 그냥 오늘의 몸 상태일 뿐이라고. 먹으면 다행이고, 못 먹어도 괜찮은 것으로. 그렇게 기대를 내려놓자, 물린 밥상 앞에서 덜 무너지게 됐습니다. 그건 요리법보다 훨씬 배우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통했던 것들
반년의 시행착오 끝에 저에게 남은 것들을 정리해 둡니다. 어디까지나 우리 아내에게 통했던 것이라, 모두에게 맞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막막한 부엌 앞에서 하나의 참고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건 요리 비법이 아니라, 여러 번 실패하며 아내의 몸이 가르쳐 준 것들입니다.
지금 돌아보면
지금 돌아보면, 그 부엌에서의 반년은 저에게 요리를 가르친 게 아니라 사랑의 방식을 가르쳤습니다. 저는 원래 무언가를 해 주면 그만큼 결과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항암 중인 아내를 먹이는 일은 결과를 보장해 주지 않았습니다. 정성과 결과가 늘 어긋났습니다. 그 어긋남을 받아들이는 게 제가 배운 가장 큰 것이었습니다. 사랑은 결과로 증명되는 게 아니라, 그저 매일 다시 시도하는 그 마음 자체라는 걸 저는 부엌에서 배웠습니다.
물린 밥상은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그건 그저 아내의 몸이 오늘 힘들다는 신호였을 뿐입니다. 제가 그걸 실패로 받아들이는 한, 저도 아내도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그걸 그냥 오늘의 날씨처럼 받아들이자, 부엌이 조금 견딜 만한 곳이 됐습니다. 안 되면 치우고, 다음을 궁리하고, 그러다 어느 날 세 숟갈이라도 넘어가면 그날은 좋은 날이었습니다.
그때의 저에게 말해 주고 싶습니다. 네 정성이 거절당한 게 아니라고. 아내는 네 마음을 다 알고 있었다고. 못 먹어서 가장 속상한 사람은 아내 자신이었다고. 그러니 물린 밥상 앞에서 너무 무너지지 말라고. 그 밥상을 다시 차리려고 부엌에 서는 것만으로, 너는 이미 사랑을 하고 있는 거라고.
지금 아내는 그 시기를 지나 조금씩 입맛을 회복했습니다. 이제는 웃으며 그때 이야기를 합니다. "당신이 그때 해 준 죽, 사실 냄새는 힘들었는데 마음은 다 알았어." 그 말 한마디가, 개수대에 죽을 부으며 서러웠던 그 모든 날들을 어루만져 줬습니다. 정성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때는 넘길 수 없었을 뿐, 아내의 마음에는 다 담겨 있었습니다.
그 시절을 지나며 저는 요리도 조금 늘었습니다. 라면밖에 못 끓이던 사람이 이제 죽도 끓이고, 달걀찜도 하고, 간단한 국은 눈대중으로 맞춥니다. 아내가 건강을 되찾은 지금은, 예전처럼 아내가 부엌의 주인으로 돌아왔지만, 가끔은 제가 나서서 밥을 짓습니다. 그럴 때 아내가 "당신 이제 제법이네" 하고 웃으면, 저는 그 힘들던 반년이 우리에게 남긴 게 상처만은 아니었다는 걸 느낍니다. 부엌은 그 시절 우리가 함께 견딘 자리이자, 지금은 우리가 함께 웃는 자리가 됐습니다.
같은 자리에 있는 분께
혹시 지금, 항암 중인 가족을 위해 매일 부엌에 서면서 물린 밥상 앞에서 무너지고 계신다면, 저의 그 반년을 떠올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두 시간 들인 음식이 한 술 만에 물러나는 그 서러움을, 저도 압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이 미워지는 그 마음도 압니다.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건, 물린 밥상은 당신의 실패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건 환자의 몸이 오늘 힘들다는 신호일 뿐입니다. 당신의 정성이 부족해서도, 요리가 서툴러서도 아닙니다. 그러니 거절당한 밥상 앞에서 자신을 탓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기대를 조금 내려놓으시길 권합니다. 먹이겠다는 마음이 클수록, 못 먹을 때의 무너짐도 큽니다. 먹으면 다행, 못 먹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부엌에 서면, 그 자리가 조금 견딜 만해집니다. 세 숟갈이라도 넘어가면 그날은 성공한 날입니다. 작은 성공을 크게 기뻐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무엇을 먹일지 막막할 땐 환자 본인에게 물어보시길 바랍니다. 정답 메뉴는 책에 없고, 그날의 몸에 있습니다. "오늘은 뭐가 좀 당겨?" 이 한마디가 많은 걸 알려 줍니다. 그리고 부디, 매일 부엌에 서는 당신의 끼니도 거르지 마시길 바랍니다. 당신이 든든해야, 그 밥상을 내일도 차릴 수 있습니다. 환자를 챙기느라 정작 자신의 밥은 선 채로 대충 때우는 날이 많아지지만, 보호자의 몸도 소중합니다. 이 긴 여정은 결국 두 사람이 함께 걷는 길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