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진단을 받은 가족을 곁에서 지켜보다 보면 "새로운 치료제가 나왔다"는 뉴스와 "임상시험에 참여해보시겠어요"라는 권유를 비슷한 시기에 마주치게 됩니다. 저는 약사이고 해외주재원으로 지내면서 아내의 치료 과정을 곁에서 지켜봤는데, 임상시험이라는 단어가 주는 막연한 기대와 막연한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내는 2026년 7월에 재건 수술까지 마쳤고, 이제 저희 부부는 앞으로의 추적 관찰과 재발 대비, 그리고 혹시 필요해질 수 있는 다음 치료 옵션들을 미리 공부해 두는 단계로 넘어왔습니다. 이 글은 의료진의 진료 지침이 아니라, 진료실에서 더 나은 질문을 던지기 위해 제가 1차 문헌을 직접 찾아 정리한 공부 기록입니다.
임상시험과 신약 개발 이야기는 용어부터 낯설고 복잡하지만, 몇 가지 큰 흐름만 잡아 두어도 담당 의료진과의 대화가 한결 수월해집니다. 특정 약이나 시험을 권하려는 글이 아니라, "지금 이런 것들이 연구되고 있구나"라는 지도를 그려 보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임상시험, 왜 한 번쯤 알아둘 만한가
임상시험은 흔히 1상, 2상, 3상으로 단계가 나뉩니다. 1상은 새로운 약의 안전한 용량을 찾는 단계, 2상은 효과가 있을 것 같다는 신호를 확인하는 단계, 3상은 기존 표준치료와 비교해 실제로 더 나은지를 대규모로 검증하는 단계입니다. 뉴스에 나오는 "획기적 신약"은 대개 이 중 어느 한 단계를 통과했다는 뜻이지, 바로 병원에서 처방받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영국의 한 연구팀은 표준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진행성 난소암 환자들이 1상 임상시험에 참여한 사례들을 분석했습니다.[10] 유방암이 아닌 다른 암종을 대상으로 한 연구이지만, 반응과 관련된 임상적 요인들을 확인했고 여러 환자가 1상 시험 이후에도 추가 치료로 이어졌다는 점, 그리고 이런 논의를 가능한 한 이른 시점에 시작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다만 이는 특정 암종·특정 병원의 자료이므로, 본인의 상황에 그대로 적용되는지는 담당 의료진과 확인이 필요합니다.
또 하나 알아두면 좋은 점은, 임상시험이라고 해서 전부 "완전히 새로운 약"을 시험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캐나다 연구팀은 이미 표준으로 쓰이고 있는 치료 조합들끼리를 비교해 "어느 쪽이 환자에게 더 나은가"를 확인하는 실용적(pragmatic) 임상시험 설계를 소개했습니다.[9] 이런 유형의 연구는 새 약의 위험 부담 없이도 치료의 근거를 더 촘촘하게 만들어 줍니다.
전이성·진행성 유방암 치료, 최근 흐름
전이성 유방암 치료는 지난 10여 년간 종양 생물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크게 달라졌습니다. 2015년에 발표된 한 리뷰 논문은 HER2 내성을 극복하는 전략, 삼중음성 유방암을 겨눈 새로운 표적, 면역계를 활용하는 접근, 혈관신생을 억제하는 새로운 방식 등을 종합적으로 정리했습니다.[1] 십여 년 전 리뷰이지만 지금 쓰이는 여러 치료 범주의 뼈대를 이해하는 데 여전히 유용합니다.
동시에, 새로운 약이 나왔다고 곧바로 초기 치료 단계에 도입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 발표된 한 논문은 선택적 에스트로겐 수용체 분해제(SERD) 계열을 비롯한 차세대 내분비요법들이 진행성 질환에서 좋은 성적을 보이자 이를 더 이른 치료 단계로 앞당기려는 시도가 늘고 있지만, 그 근거가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을 수 있다는 신중론을 제기했습니다.[3] "효과가 있을 수 있다"와 "이른 단계에서도 표준치료보다 낫다고 입증되었다"는 서로 다른 말이라는 점을 짚어주는 논문입니다.
차세대 내분비요법 후보들
ER 양성·HER2 음성 유방암에서는 내분비요법이 치료의 근간을 이룹니다. 최근 개발되는 약들은 기존 아로마타제 억제제나 타목시펜과 다른 방식으로 에스트로겐 수용체를 겨눕니다. 카미제스트란트라는 차세대 경구 SERD를 표준 내분비요법과 비교하는 CAMBRIA-1, CAMBRIA-2라는 두 개의 3상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며, 각각 재발 중간~고위험군의 조기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합니다. 하나는 이미 2~5년간 표준 보조 내분비요법을 받고 재발 없이 지낸 환자들에서 이어서 투여하는 방식을, 다른 하나는 처음부터 카미제스트란트를 쓰는 방식을 시험하며, 두 시험을 합쳐 약 1만 명 규모의 환자가 참여할 예정입니다.[4] 다만 이런 대규모 3상 시험은 결과가 나오기까지 수년이 걸리는 것이 보통입니다.
또 다른 계열로는 H3B-6545라는 선택적 에스트로겐 수용체 공유결합 길항제(SERCA)가 있습니다.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ER 양성·HER2 음성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1/2상 시험에서 용량 증량과 확장 코호트 데이터가 보고되었고, 연구진은 이전에 치료받은 ER 양성 전이성 유방암 환자를 위한 내분비요법 옵션으로 더 연구해볼 만하다고 결론지었습니다.[6] 아직 후속 대규모 검증이 필요한 초기 단계 데이터라는 점은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세포주기를 겨누는 신약, CDK4/6 억제제 계열의 다음 후보
CDK4/6 억제제는 이미 HR 양성·HER2 음성 유방암의 표준치료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계열에 새로 도전하는 후보 중 하나가 비레오시클립입니다. 진행성 고형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다기관 1상 시험에서 단독요법과 내분비요법 병용요법 모두 안전성과 내약성이 평가되었고, 단독요법의 2상 권장 용량은 480mg을 하루 두 번, 병용요법은 360mg을 하루 두 번으로 정해졌습니다.[5] 1상 시험은 말 그대로 적정 용량과 안전성을 찾는 단계이므로, 효과에 대한 최종 결론은 아직 이르다는 점을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전체를 활용한 약물 재창출이라는 접근
완전히 새로운 물질을 처음부터 개발하는 대신, 이미 다른 질환에 쓰이고 있는 약을 유방암에 재창출(repurposing)하려는 연구도 활발합니다. 당뇨병 치료제인 메트포르민처럼 이미 안전성 프로파일이 잘 알려진 약들이 유방암에서도 시험된 사례가 있습니다. 한 연구팀은 유방암과, 유방암 발생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진 다른 질환들이 공유하는 유전적 특징을 분석해, 그 다른 질환에 이미 쓰이고 있는 약들 중 유방암 치료 후보가 될 만한 것들을 컴퓨터 분석으로 제안했습니다.[8] 이는 실험실 단계의 계산 생물학 연구로, 실제 환자에게 효과가 있는지는 별도의 임상시험을 거쳐야 확인할 수 있는 단계입니다.
생체리듬과 치료 타이밍, 아직은 기초 연구 단계
최근 몇 년 사이 학계에서 관심이 커지고 있는 주제 중 하나는 우리 몸의 하루 주기 리듬(일주기, circadian rhythm)이 암세포의 증식이나 전이 같은 특성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입니다. 2026년에 발표된 한 리뷰는 일주기 시계를 구성하는 분자적 메커니즘이 유방암의 여러 특징에 어떻게 관여하는지, 그리고 이것이 치료에 어떤 함의를 가질 수 있는지를 정리했습니다.[2] 다만 이는 세포·분자 수준의 메커니즘을 다루는 기초 연구 리뷰로, "몇 시에 약을 먹어야 한다"는 식의 구체적인 진료 지침으로 이어진 단계는 아닙니다. 담당 의료진이 정한 복약 시간과 방법을 임의로 바꿀 근거로 삼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부작용 관리도 임상시험의 대상입니다
새로운 항암제만이 아니라, 치료 과정에서 겪는 부작용을 줄이는 방법도 임상시험을 통해 검증됩니다. 국내에서 진행된 한 소규모 무작위 이중맹검 시험은 화학요법 이후 영구적으로 남은 탈모(영구 탈모)를 겪는 유방암 생존자들을 대상으로, 감귤류·카카오·과라나·양파 성분을 배합한 국소 로션(CG428)을 하루 두 번씩 6개월간 발라본 결과를 살펴봤습니다. 연구진은 위약 대비 안전성과 내약성을 확인했고, 모발 밀도와 환자가 스스로 느끼는 개선 정도에서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경향을 관찰했다고 보고했습니다.[7] 다만 이는 참여자 수가 많지 않은 예비(pilot) 연구였다는 점에서, 효과가 확정적으로 입증되었다고 보기는 이르며 후속 대규모 연구가 필요한 단계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임상시험에 참여하면 검증되지 않은 약을 실험하는 것 아닌가요?
임상시험은 사전에 윤리위원회의 심사를 거치고, 참여자는 충분한 설명을 들은 뒤 동의서에 서명하는 절차(informed consent)를 거칩니다. 언제든 참여를 중단할 권리도 있습니다. 다만 단계(1상~3상)에 따라 검증된 정도가 다르므로, 어떤 단계의 시험인지, 어떤 목적으로 설계되었는지를 담당 의료진에게 구체적으로 물어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이 글에서 소개한 약들은 지금 처방받을 수 있나요?
이 글에서 다룬 대부분은 아직 임상시험 단계에 있는 물질입니다. 시판 승인을 받은 표준치료와는 다르므로, 특정 약을 요청하기보다는 "지금 제 상황에서 참여 가능한 임상시험이 있는지" 정도로 질문의 틀을 잡아보는 편이 대화를 시작하기 쉽습니다.
임상시험 참여 여부는 누가 결정하나요?
최종적으로는 환자 본인의 선택이지만, 현재 질병 상태·이전 치료 이력·건강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참여 가능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담당 의료진의 몫입니다. 이 글은 그 대화를 준비하기 위한 배경 지식을 정리한 것일 뿐, 특정 치료나 시험을 권유하지 않습니다.
더 자세한 임상시험 정보는 어디서 찾을 수 있나요?
진행 중인 임상시험의 개요는 공공 임상시험 등록 데이터베이스에서, 개별 연구 논문의 원문은 PubMed 등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등록 정보만으로 본인에게 적합한지 판단하기는 어려우므로, 관심 있는 시험을 찾았다면 담당 의료진과 함께 조건을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참고 자료
- Santa-Maria CA, et al. Changing Treatment Paradigms in Metastatic Breast Cancer: Lessons Learned. JAMA Oncol. 2015. doi:10.1001/jamaoncol.2015.1198 — 원문 보기
- Hernández-Barrientos LR, et al. Circadian clock control of breast cancer hallmarks: molecular mechanisms and therapeutic implications. Cancer Metastasis Rev. 2026. doi:10.1007/s10555-026-10337-y — 원문 보기
- Lei L, et al. Caution over haste: why novel endocrine therapy in early lines should wait in Estrogen receptor positive human epidermal growth factor receptor 2 negative breast cancer. Breast Cancer Res. 2026. doi:10.1186/s13058-025-02203-6 — 원문 보기
- Hamilton EP, et al. CAMBRIA-1 & CAMBRIA-2 phase III trials: camizestrant versus standard endocrine therapy in ER+/HER2- early breast cancer. Future Oncol. 2025. doi:10.1080/14796694.2025.2459548 — 원문 보기
- Wang J, et al. Safety and tolerability of bireociclib for the treatment of advanced solid tumors as monotherapy and in combination with endocrine therapy: a multicenter, open-label, phase 1 clinical trial. BMC Med. 2025. doi:10.1186/s12916-025-04364-9 — 원문 보기
- Hamilton E, et al. Phase 1/2 study of H3B-6545 in women with locally advanced/metastatic estrogen receptor-positive, HER2-negative breast cancer. Breast Cancer Res. 2025. doi:10.1186/s13058-025-02069-8 — 원문 보기
- Kang D, et al. Impact of a topical lotion, CG428, on permanent chemotherapy-induced alopecia in breast cancer survivors: a pilot randomized double-blind controlled clinical trial (VOLUME RCT). Support Care Cancer. 2020. doi:10.1007/s00520-019-04982-z — 원문 보기
- Lalagkas PN, et al. Shared genetics between breast cancer and predisposing diseases identifies novel breast cancer treatment candidates. Hum Genomics. 2024. doi:10.1186/s40246-024-00688-4 — 원문 보기
- Hilton J, et al. Novel Methodology for Comparing Standard-of-Care Interventions in Patients With Cancer. J Oncol Pract. 2016. doi:10.1200/JOP.2016.013474 — 원문 보기
- George A, et al. Clinical factors of response in patients with advanced ovarian cancer participating in early phase clinical trials. Eur J Cancer. 2017. doi:10.1016/j.ejca.2017.01.020 — 원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