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서 의사 선생님이 “이번엔 항암화학요법으로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보호자 머릿속에는 질문이 쏟아집니다. 지금까지 먹던 표적치료제로는 왜 안 되는 걸까. 화학요법 전에 시도해 볼 수 있는 다른 표적치료는 없었을까. 이 전환의 기준은 누가, 무엇을 보고 정하는 걸까.
저는 의료인이 아닙니다. 해외에서 주재원으로 일하며 약사인 아내의 진료 자료를 챙기고, 진료 전날 밤이면 논문을 찾아 읽는 것이 제 역할이 되었습니다. 이 글은 그 과정에서 정리한 기록입니다. 호르몬수용체 양성(HR+), HER2 음성 유방암 환자와 보호자가 “화학요법과 표적치료의 전환 시점”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1차 문헌을 근거로 정리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전환은 어느 한 순간의 결정이 아니라 여러 단계를 거치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 단계마다 종양의 유전체 정보가 다음 치료를 정하는 데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HR+/HER2- 유방암, 왜 치료 순서가 이렇게 복잡한가
호르몬수용체 양성이면서 HER2 음성인 유방암은 전체 유방암의 65~70%를 차지하는, 가장 흔한 아형입니다[1]. 이 아형의 특징은 내분비요법(호르몬 치료)이 초기 단계와 전이 단계 모두에서 치료의 근간이 된다는 점입니다[1]. 화학요법은 초기 단계에서는 병기와 종양 생물학적 특성에 따라, 전이성 질환에서는 내분비요법에 대한 내성이 생긴 이후에 사용됩니다[1].
전이성 HR+/HER2- 유방암은 다른 아형에 비해 비교적 긴 경과를 보이지만, 환자마다 편차가 크고 종양 내부에서도 이질성이 상당합니다[4]. 조기 유방암 환자의 약 30%는 시간이 지나 전이로 진행하고, 5~8%는 처음 진단 시점부터 이미 전이 상태로 발견됩니다[4]. 즉 “언제 어떤 치료로 넘어가는가”라는 질문은 대부분의 HR+/HER2- 유방암 환자가 언젠가 마주하게 되는 질문입니다.
내분비요법과 CDK4/6 억제제를 먼저 쓰는 이유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의 2021년 개정 지침은 폐경 후 여성이면서 이전에 치료받은 적이 없는 HR+/HER2- 전이성 유방암 환자에게 비스테로이드성 아로마타제 억제제와 CDK4/6 억제제 병용을 1차 치료로 권고합니다[2]. CDK4/6 억제제는 초기 단계에서는 원격 재발을 줄이고, 전이성 단계에서는 전체생존기간을 늘리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습니다[1].
다만 이 조합이 모든 환자에게 오래 듣는 것은 아닙니다. HR+/HER2- 전이성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단일세포 유전자 발현 분석 연구에 따르면, CDK4/6 억제제에 내성을 보이는 환자는 약 3분의 1에 이르며, 이는 치료 반응을 미리 예측할 표지자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7]. 이 연구는 종양에 침투한 세포독성 자연살해세포와 CD8+ T세포의 존재가 치료 반응을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7].
내성은 왜, 어떻게 생기는가 — 유전체가 보여주는 그림
CDK4/6 억제제에 노출된 59개 종양을 전장엑솜분석한 연구는 내성과 관련된 여러 유전자 변화를 확인했습니다. RB1 유전자의 소실, AKT1·RAS·AURKA·CCNE2·ERBB2·FGFR2 유전자의 활성화 변이, 그리고 에스트로겐수용체 발현 소실이 대표적입니다[5]. 이런 변화들은 시험관 실험에서도 실제로 약물 내성을 유발하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5].
최근에는 이러한 유전체 변화가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밝히는 연구도 나왔습니다. APOBEC3라는 효소군에 의한 돌연변이 발생 과정이 치료 후 재발한 HR+ 유방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고, 이 신호가 강할수록 내분비요법과 CDK4/6 억제제 병용치료의 무진행생존기간이 짧아지는 경향이 확인되었습니다[9]. 이 연구는 APOBEC3에 의한 돌연변이 발생이 RB1 유전자 소실 같은 구체적인 변화를 통해 치료 내성을 촉진한다고 설명합니다[9].
ESR1 변이: 내분비요법 내성의 대표적인 신호
ESR1 유전자, 즉 에스트로겐수용체 자체의 활성화 변이는 후천적으로 생기는 내분비요법 내성의 대표적인 기전으로 오래전부터 보고되어 왔습니다[8]. 이 변이는 주로 수용체의 리간드결합영역에 생기며, 380·536·537·538번 코돈 부근에 특히 자주 나타납니다[3]. 아로마타제 억제제 치료 중 진행한 전이성 유방암의 약 40%에서 이 변이가 보고된 바 있습니다[3].
임상적으로는 질병이 재발하거나 내분비요법 도중 진행할 때, 순환종양DNA(ctDNA)를 이용해 ESR1 변이를 검사하는 것이 권고되고 있습니다[3]. 이 검사 결과는 엘라세스트란트 같은 새로운 계열의 선택적 에스트로겐수용체 분해제(SERD) 사용 여부를 정하는 데 참고자료로 쓰입니다[3]. 다만 검사 방법과 시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어, 검사의 정확도를 높이는 것 자체가 별도의 연구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3].
표적치료로의 전환 — PIK3CA, HER2, BRCA 변이라는 갈림길
ESR1 외에도 치료 방향을 바꾸는 변이들이 있습니다. PIK3CA 유전자 변이는 HR+/HER2- 유방암의 약 42%에서 발견되며, 이 중 다섯 가지 변이 유형(H1047R, E545K, E542K, N345K, H1047L)이 전체 변이의 73%를 차지합니다[10]. ASCO 지침은 PIK3CA 변이가 있는 환자에게 내분비요법에 알펠리십을 추가하는 것을, 이전에 CDK4/6 억제제를 썼든 안 썼든 상관없이 권고합니다[2].
BRCA1 또는 BRCA2 유전자에 생식세포 변이가 있는 HER2 음성 전이성 유방암 환자에게는 올라파립이나 탈라조파립 같은 PARP 억제제가 1차부터 3차 치료 사이에 권고됩니다[2]. 흥미로운 점은, “HER2 음성”으로 분류된 종양이라도 HER2 유전자에 증폭이 아닌 활성화 변이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SUMMIT 임상시험은 이런 HER2 변이를 가진 HR+/HER2- 전이성 유방암 환자에게 네라티닙과 풀베스트란트, 트라스투주맙을 함께 쓰는 3제 요법의 결과를 보고했습니다[6]. 이는 표준 검사에서 HER2 음성으로 나온 종양이라도, 정밀 유전자 검사를 통해 추가적인 표적치료 옵션을 찾을 여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화학요법으로 넘어가는 시점은 언제인가
정리하면, HR+/HER2- 전이성 유방암의 치료는 내분비요법과 CDK4/6 억제제에서 시작해, 진행이 확인될 때마다 ESR1·PIK3CA·HER2·BRCA 같은 유전자 변이 여부를 다시 검사하고, 해당 변이를 표적으로 하는 치료로 옮겨가는 과정을 반복합니다[1][2][4]. 화학요법은 이런 내분비요법·표적치료 조합들이 더 이상 듣지 않을 때, 즉 내분비요법에 대한 내성이 확인된 이후의 선택지로 자리합니다[1].
다만 어떤 변이가 발견되든 반드시 그에 맞는 표적치료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표적치료가 있다 해도 반응의 정도와 지속 기간은 환자마다 다릅니다. 최근 발표된 종설은 이런 개인차를 고려해 종양 조직이나 ctDNA를 통한 유전체 검사를 치료 선택의 중요한 도구로 제시하면서도, 아직 풀리지 않은 질문들이 많다는 점을 함께 지적합니다[4]. “표적치료가 가능한 변이가 없다”는 검사 결과 자체도 화학요법으로 넘어가는 시점을 판단하는 데 참고가 되는 정보입니다.
진료실에서 물어볼 수 있는 질문들
보호자로서 제가 준비해 간 질문은 대략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지금 시점에 ESR1이나 PIK3CA, HER2 변이 검사를 다시 해볼 필요가 있는지, 조직검사와 혈액검사(ctDNA) 중 어느 쪽이 지금 상황에 더 적합한지, 발견된 변이에 맞는 표적치료 옵션이 있는지, 그리고 그 옵션과 화학요법을 비교했을 때 각각의 장단점은 무엇인지였습니다. 이런 질문들이 정답을 정해주지는 않지만, 담당 의료진과 더 구체적인 대화를 나누는 데는 도움이 되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CDK4/6 억제제가 듣지 않으면 곧바로 화학요법을 시작하나요?
A.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진행이 확인되면 ESR1, PIK3CA, HER2, BRCA 등 유전자 변이를 다시 검사하고, 해당 변이에 맞는 표적치료가 있는지부터 검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2][3][6]. 화학요법은 이런 표적치료 옵션들이 소진되거나 적용되지 않을 때 고려되는 선택지 중 하나입니다[1].
Q. ESR1 변이 검사는 꼭 조직검사로 해야 하나요?
A. 순환종양DNA(ctDNA)를 이용한 혈액검사가 널리 쓰이고 있지만, 검사 방법과 시점에 따라 결과의 정확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연구를 통해 지적되고 있습니다[3]. 어떤 검사가 적절한지는 담당 의료진이 환자의 상황을 보고 판단할 부분입니다.
Q. “HER2 음성”이라고 들었는데 HER2를 표적으로 한 치료를 받을 수 있나요?
A. 표준 검사에서 HER2 음성으로 분류되더라도, 유전자 시퀀싱을 통해 HER2 활성화 변이가 발견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결과가 보고된 바 있습니다[6]. 다만 이는 모든 환자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니며, 정밀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Q. 유전자 변이가 하나도 안 나오면 어떻게 되나요?
A. 표적치료로 이어질 수 있는 변이가 확인되지 않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이 경우 화학요법을 포함한 다른 치료 옵션을 담당 의료진과 논의하게 됩니다[1][4]. 변이가 없다는 결과 자체도 다음 치료를 정하는 데 의미 있는 정보입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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