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분비 저항성 극복을 위한 신약 개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는 "호르몬 양성 유방암"이라는 말을 들으면 오히려 안심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항호르몬제 하나로 오래 관리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내의 진료를 따라다니면서, 그 항호르몬제도 언젠가는 듣지 않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의료진은 이것을 "내분비 저항성"이라고 불렀습니다.

저는 약사이고, 지금은 해외주재원으로 나가 있는 남편이자 보호자입니다. 전공 덕분에 약의 기전을 읽는 데는 익숙하지만, 정작 아내의 병에 관해서는 진료실 밖에서 논문을 뒤져야 하는 처지가 낯설었습니다. 재건 수술은 2026년 7월에 마무리됐고, 지금은 다음 단계인 약물 치료를 함께 공부하는 중입니다. 이 글은 그 공부의 기록입니다. 진료 지침이 아니라, 다음 진료 때 담당 의료진과 더 정확한 질문을 주고받기 위한 준비물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같은 고민을 하고 계실 다른 환자분과 가족분들께, 지금 학계에서 어떤 방향으로 신약이 개발되고 있는지 정리해 공유합니다.

내분비 저항성, 왜 생기는 걸까요

호르몬 수용체 양성(HR+) 유방암은 에스트로겐이 암세포의 성장 신호로 이용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에스트로겐의 작용을 막는 약, 이른바 내분비 치료(항호르몬 치료)가 오랫동안 표준 치료로 쓰여 왔습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암세포가 이 차단을 피해 가는 방법을 찾아낸다는 점입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경로 중 하나가 에스트로겐 수용체를 만드는 유전자, ESR1의 돌연변이입니다. 이 돌연변이가 생기면 에스트로겐이 없어도 수용체가 계속 켜진 것처럼 작동해, 기존 약이 잘 듣지 않게 됩니다.[7]

이 때문에 최근 몇 년 사이 연구의 초점은 "에스트로겐 신호를 막는 약"에서 "에스트로겐 수용체 자체를 분해해 없애는 약"으로 옮겨 가고 있습니다. 이런 계열을 선택적 에스트로겐 수용체 분해제, 흔히 SERD(Selective Estrogen Receptor Degrader)라고 부릅니다.[6]

기존 표준 치료, 풀베스트란트의 한계

SERD 계열에서 가장 먼저 자리를 잡은 약은 풀베스트란트(fulvestrant)입니다. 다만 이 약은 먹는 약이 아니라 근육주사로 투여해야 하고, 생체이용률이 낮아 충분한 약효를 내기 어렵다는 한계가 오래전부터 지적되어 왔습니다.[2] CDK4/6 억제제 치료를 받은 뒤 병이 진행한 환자들에서 풀베스트란트 단독 요법의 무진행 생존 기간(약이 병의 진행을 막아 준 기간)은 중앙값 2~3개월에 그친다는 보고도 있습니다.[10]

이런 한계 때문에, "먹는 약이면서도 더 강하게 수용체를 분해하는" 다음 세대 SERD를 개발하려는 시도가 이어져 왔습니다.

경구 SERD라는 새로운 계열

경구용 SERD는 아로마타제 억제제, 선택적 에스트로겐 수용체 조절제(SERM)에 이어 등장한 세 번째 계열의 내분비 치료제로 소개되고 있습니다.[1] 여러 제약사가 각자의 후보 물질을 개발 중이며, 임상시험 단계도 물질마다 다릅니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규제 당국의 승인을 받아 실제 진료에 쓰이고 있는 약이 엘라세스트란트(elacestrant)입니다.

경구 SERD의 공통된 목표는 근육주사의 불편함을 없애는 것뿐 아니라, ESR1 돌연변이가 있는 암세포에서도 수용체를 안정적으로 분해해 저항성을 넘어서는 데 있습니다. 조기 유방암(전이가 없는 단계) 영역에서도 이 계열 약제를 보조 치료나 수술 전 치료로 활용할 수 있을지 임상시험이 진행 중입니다.[6] 여러 후보 물질 가운데 엘라세스트란트는 가장 먼저 규제 당국 승인을 받았다는 점에서, 이 계열 전체를 대표하는 사례로 자주 소개됩니다.[4]

엘라세스트란트, 지금 가장 앞서 있는 치료제

엘라세스트란트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2023년 1월 27일, 최소 한 차례 내분비 치료를 받은 뒤 병이 진행한 ESR1 변이 동반 HR+/HER2- 전이성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승인한 경구 SERD입니다. 약리학적으로는 용량에 따라 에스트로겐 수용체에 작용제와 길항제로 동시에 작용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지며, 고용량에서는 수용체를 직접 차단하고 선택적으로 감소시키는 쪽으로 작용합니다.[8]

약동학 측면에서는 경구 생체이용률이 약 10~11%로 낮은 편이고, 간의 CYP3A4 효소로 대사되어 대변으로 배설됩니다. 이 때문에 이트라코나졸처럼 CYP3A4를 강하게 억제하는 약, 또는 리팜핀처럼 강하게 유도하는 약과 함께 쓸 때는 상호작용을 주의해야 합니다. 간 기능이 중등도로 떨어져 있는 환자에서는 용량 조절이 권고되지만, 신장 기능 저하만 있는 경우에는 별도의 용량 조절이 필요하지 않다고 보고되어 있습니다.[8]

임상시험이 보여준 것: ESR1 변이와 EMERALD 연구

엘라세스트란트의 승인 근거가 된 3상 임상시험 EMERALD 연구는, 표준 내분비 단독 요법과 비교했을 때 전체 대상자에서 무진행 생존 기간을 개선했습니다. 다만 이 효과는 주로 ESR1 변이가 있는 환자군에서 두드러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8] 이 때문에 유럽의약품청, 미국 FDA, 영국 의약품건강관리제품규제청 모두 ESR1 변이가 확인된 환자를 대상으로 승인을 내주었고, 유럽종양학회(ESMO)와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진료 지침에도 반영되었습니다.[10]

흥미로운 점은, ESR1 변이가 뚜렷하지 않은 환자군에서는 무진행 생존 기간 개선이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는 사후 분석 결과입니다. 이는 이 약의 효과가 특정 분자 표지자(ESR1 변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10] 그래서 최근 논문들은 병이 진행할 때마다 액체 생검(혈액 속 순환 종양 DNA 검사)으로 ESR1 변이 여부를 다시 확인하는 것이 치료 선택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하고 있습니다.[10] 다만 이런 검사와 그 해석은 담당 의료진이 환자의 전체 상황을 보고 판단할 문제입니다.

가장 최근에는 ESR1 변이 양성이면서 동시에 내분비 치료에 반응이 좋았던(내분비 감수성이 높았던) 환자군에서 특히 의미 있는 이득이 나타난다는 점을 근거로, 우선 접근권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학계에 제기된 바 있습니다.[10] 아직 이는 정책·행정 차원의 논의이며, 개별 환자의 치료 결정과는 별개의 사안입니다.

이미 내성이 생긴 뒤에도 듣는 약일까

보호자로서 가장 궁금했던 부분은, 이미 풀베스트란트를 써서 내성이 생긴 뒤에도 엘라세스트란트가 의미가 있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실험실 수준의 전임상 연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연구진은 환자에게서 얻은 순환종양세포(CTC)를 배양하고, 환자 유래 이종이식 모델을 만들어 풀베스트란트에 내성을 보이는 세포에서 엘라세스트란트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관찰했습니다.[9]

그 결과, 풀베스트란트에 내성을 보이는 세포와 동물 모델 모두 엘라세스트란트에는 반응을 보였고, 이 반응은 ESR1이나 PIK3CA 유전자의 돌연변이 여부와 무관하게 나타났습니다. 다만 이는 실험실·동물 모델 단계의 결과이며,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연구진 스스로도 이 결과가 전이성 환경에서 풀베스트란트 이후 치료가 진행한 환자에게 엘라세스트란트가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조심스럽게 표현하고 있습니다.[9]

CDK4/6 억제제 실패 후, 다음 선택은 어떻게 정해지나

실제 진료 현장에서는 엘라세스트란트 하나만 놓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CDK4/6 억제제와 내분비 치료를 함께 쓰다가 병이 진행했을 때, 다음 치료를 무엇으로 이어갈지는 ESR1 변이 여부를 포함한 여러 생체표지자를 바탕으로 한 알고리즘으로 논의되고 있습니다.[5] 이 알고리즘에서는 ESR1 변이가 있는 경우 풀베스트란트나 엘라세스트란트 같은 SERD 계열을,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다른 표적 치료나 세포독성 항암제를 포함한 여러 대안을 함께 검토하는 흐름을 다루고 있습니다.[5]

즉, 엘라세스트란트는 "내분비 저항성을 극복하는 만능 열쇠"가 아니라, 환자의 유전자 검사 결과와 이전 치료 경과에 따라 선택 여부가 달라지는 여러 옵션 중 하나로 이해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앞으로의 방향

엘라세스트란트 외에도 여러 경구 SERD 후보 물질이 임상 개발 단계에 있으며, 단독 요법뿐 아니라 CDK4/6 억제제 등과의 병용 요법으로도 연구되고 있습니다.[1] 아직 전이성 단계를 넘어 조기 유방암의 보조·수술 전 치료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는 진행 중인 임상시험들의 결과를 더 지켜봐야 하는 단계입니다.[6] 저항성의 분자적 기전을 더 정밀하게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치료 순서를 정하는 흐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7]

자주 묻는 질문

Q. 내분비 저항성이 생겼다는 건 항호르몬 치료를 아예 끝내야 한다는 뜻인가요?
아닙니다. 저항성은 기존에 쓰던 특정 약에 반응이 줄어든다는 뜻이지, 내분비 치료 전체를 포기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ESR1 변이 등 원인을 확인한 뒤 다른 계열의 내분비 치료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Q. ESR1 변이 검사는 어떻게 하나요?
조직 검사 외에도 혈액 속 순환종양DNA를 이용한 액체 생검으로 확인하는 방법이 논의되고 있습니다.[10] 검사 방법과 시점은 병의 단계와 이전 치료력에 따라 담당 의료진이 정합니다.

Q. 경구 SERD는 부작용이 적은가요?
투여 경로가 주사에서 경구로 바뀐다고 해서 부작용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약물마다 대사 경로와 상호작용, 부작용 프로필이 다르므로, 함께 복용 중인 다른 약이 있다면 반드시 의료진·약사와 상의해야 합니다.

Q. 아직 내분비 치료에 반응하고 있는 환자도 이 내용을 알아 둘 필요가 있나요?
당장 약을 바꿀 필요는 없더라도, 저항성이 왜 생기고 다음 단계에서 어떤 선택지가 논의되는지 미리 알아 두면 진료실에서 더 구체적인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

  1. Guglielmi G, et al. Pharmacological insights on novel oral selective estrogen receptor degraders in breast cancer. Eur J Pharmacol. 2024. doi:10.1016/j.ejphar.2024.176424 — https://pubmed.ncbi.nlm.nih.gov/38402929/
  2. Gheysen M, et al. Oral SERDs changing the scenery in hormone receptor positive breast cancer, a comprehensive review. Cancer Treat Rev. 2024. doi:10.1016/j.ctrv.2024.102825 — https://pubmed.ncbi.nlm.nih.gov/39293125/
  3. Sahin TK, et al. Elacestrant in metastatic breast cancer: current advancements and future perspectives. Expert Rev Anticancer Ther. 2026. doi:10.1080/14737140.2025.2610263 — https://pubmed.ncbi.nlm.nih.gov/41457638/
  4. Keenan JC, et al. Novel oral selective estrogen receptor degraders (SERDs) to target hormone receptor positive breast cancer: elacestrant as the poster-child. Expert Rev Anticancer Ther. 2024. doi:10.1080/14737140.2024.2346188 — https://pubmed.ncbi.nlm.nih.gov/38642015/
  5. Astore S, et al. A therapeutic algorithm guiding subsequent therapy selection after CDK4/6 inhibitors' failure: A review of current and investigational treatment for HR+/Her2- breast cancer. Crit Rev Oncol Hematol. 2024. doi:10.1016/j.critrevonc.2024.104535 — https://pubmed.ncbi.nlm.nih.gov/39433229/
  6. Ascione L, et al. Endocrine therapy for early breast cancer in the era of oral selective estrogen receptor degraders: challenges and future perspectives. Curr Opin Oncol. 2024. doi:10.1097/CCO.0000000000001085 — https://pubmed.ncbi.nlm.nih.gov/39246179/
  7. Wang Y, et al. The race to develop oral SERDs and other novel estrogen receptor inhibitors: recent clinical trial results and impact on treatment options. Cancer Metastasis Rev. 2022. doi:10.1007/s10555-022-10066-y — https://pubmed.ncbi.nlm.nih.gov/36229710/
  8. Beumer JH, et al. Pharmacology and pharmacokinetics of elacestrant. Cancer Chemother Pharmacol. 2023. doi:10.1007/s00280-023-04550-7 — https://pubmed.ncbi.nlm.nih.gov/37314500/
  9. Dubash TD, et al. Modeling the novel SERD elacestrant in cultured fulvestrant-refractory HR-positive breast circulating tumor cells. Breast Cancer Res Treat. 2023. doi:10.1007/s10549-023-06998-w — https://pubmed.ncbi.nlm.nih.gov/37318638/
  10. Valenza C, et al. Elacestrant in ESR1-mutant, endocrine-responsive metastatic breast cancer: should health authorities consider post hoc data to inform priority access?. ESMO Open. 2024. doi:10.1016/j.esmoop.2024.103701 — https://pubmed.ncbi.nlm.nih.gov/39232441/
OnZu

OnZu (보호자)

아내의 유방암 진단 이후, 식이와 생활을 직접 공부하며 기록하는 보호자입니다. 모든 글은 발표된 연구를 바탕으로 정리하며, 의학적 판단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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