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유방암 진단을 받은 뒤로, 저는 약사인 아내보다 오히려 제가 더 많은 논문을 뒤적이게 되었습니다. 해외에서 주재원으로 일하며 진료 일정에 맞춰 오가는 동안, 진료실에서 짧은 시간에 결정해야 하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았습니다. 수술 방식, 재건 여부, 항암 여부와 시기까지—의료진이 의학적으로 옳은 답을 알려줄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어떤 삶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에는 환자와 가족이 직접 답해야 하는 부분이 훨씬 많았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종양학 분야에서 자주 언급되는 표현이 "환자 중심 치료(patient-centered care)"입니다. 이는 단순히 친절한 태도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치료 방향을 정하는 과정에 환자가 보고하는 증상과 삶의 질, 가치관을 실제 의사결정 자료로 반영하겠다는 흐름을 가리킵니다. 아내의 재건 수술이 지난 7월 마무리되기까지 저희 부부가 거쳐온 여러 결정의 순간들을 떠올리며, 이 흐름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1차 문헌을 통해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 글은 의료진이 아닌 보호자가 공부한 기록입니다. 진료 지침을 대신할 수 없으며, 특정 치료나 결정을 권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다음 진료 때 의료진과 더 구체적인 대화를 나누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정리했습니다.
왜 "환자마다 다른 치료"가 새삼 강조되는가
호르몬수용체 양성/HER2 음성 전이성 유방암은 전체 전이성 유방암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유형입니다. 최근 발표된 한 종설에 따르면 이 유형은 비교적 긴 경과를 보이지만 환자마다 편차가 크고, 같은 종양 안에서도 이질성이 크다는 특징이 있습니다.[1] 내분비 치료가 오랫동안 치료의 중심축 역할을 해왔지만,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의 환자에서 내성이 생기고, 이후에는 표적치료제나 새로운 세포독성 항암제로 치료 방향을 바꾸게 됩니다.[1]
중요한 점은, 내성이 생기는 방식과 시점이 환자마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종양의 유전자 변이 양상 같은 생물학적 요인과 더불어, 환자의 전신 상태나 삶의 우선순위 같은 임상적·개인적 요인이 함께 다음 치료를 정하는 데 관여합니다.[1] 즉 "표준치료"라는 하나의 답이 있다기보다, 같은 진단명 안에서도 여러 갈래의 치료 경로가 열려 있고 그중 어느 길을 택할지에 환자의 목소리가 들어갈 여지가 있다는 뜻입니다. 저희가 진료실에서 느꼈던 "선택지가 하나가 아니구나"라는 감각은 막연한 인상이 아니라, 이 분야 연구자들도 공통으로 짚고 있는 현실이었습니다.
환자가 직접 보고하는 증상, 왜 진료 기록만큼 중요한가
전이성 유방암 치료의 목표는 완치보다 증상 조절과 삶의 질 유지, 진행 지연에 가깝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환자가 스스로 느끼는 증상과 바람—이른바 환자보고결과(Patient-Reported Outcome, PRO)—이 치료 방향을 정하는 데 특히 중요한 정보가 됩니다.[2] 실제로 PALOMA-3, MONALEESA-7, HER2CLIMB, KEYNOTE-119 같은 대규모 3상 임상시험들은 이미 PRO 항목을 시험 설계에 포함해 왔습니다.[2]
이 지점은 항암치료를 이미 마친 생존자에게도 이어집니다. 65세 이상 유방암 생존자 1,245명을 대상으로 한 미국의 한 연구에서는, 진단 후 평균 68개월이 지난 시점에도 피로감(76.8%), 근육통(72.1%), 관절통(72.5%)을 호소하는 비율이 높았고, 과거 항암화학요법을 받은 환자군은 손발 저림(교차비 3.16), 탈모(교차비 2.72), 피로감(교차비 1.80) 위험이 유의하게 더 높았습니다.[7] 치료가 끝났다고 해서 몸의 이야기가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 수치들이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치료가 끝난 뒤에도 남는 증상 — 비율과 배수는 서로 다른 자다
65세 이상 유방암 생존자 1,245명 · 진단 후 평균 68개월이 지난 시점의 조사. 왼쪽은 그 증상을 호소한 사람의 비율, 오른쪽은 과거 항암화학요법을 받은 군의 교차비(붉은 선 1.0이 «차이 없음» 자리).
«보고 없음»은 그 증상이 없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연구가 그 항목을 그 방식으로는 보고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또 교차비 3.16은 «위험이 3.16배»가 아니라 승산(odds)의 비이며, 흔한 증상일수록 실제 비율 차이보다 커 보입니다. 비율과 교차비를 같은 자로 읽지 마십시오.
출처: 본문에 실린 미국 노년 유방암 생존자 환자보고결과 연구 [7]
재건이냐 "플랫"이냐 — 수술 이후의 몸에 대한 결정
유방절제술 이후 환자들은 즉시 재건, 지연 재건, 그리고 재건 없이 "플랫"으로 지내는 선택 사이에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한 종설은 유방재건을 하지 않은 환자에게 흔히 남는 측면부 여분 조직("도그이어")이 불편감과 미용적 고민을 남길 수 있음을 지적하면서도, 현재의 진료 관행이 이런 여분 조직을 다듬는 미용적 평편 마감(aesthetic flat closure)보다 재건 쪽으로 기울어 있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합니다.[3] 재건을 원하지 않는 여성이 다수임에도, 남겨진 여분 피부와 조직이 심리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언급됩니다.[3]
뉴질랜드에서 최근 유방수술을 받은 여성 24명을 인터뷰한 질적 연구는 이 결정 과정을 더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참여자들은 수술 결정을 두려움과 불확실성 속에서 내렸다고 답했고, 수술 후 모습을 미리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자료가 일상적으로 제공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플랫으로 남기"를 선택한 여성들에게 별도의 지지와 정보가 더 필요하다는 점이 공통으로 나타났습니다.[10] 저희 부부도 재건 여부를 정할 때 참고할 만한 이미지 자료를 스스로 찾아다녀야 했던 경험이 있어서, 이 부분은 유독 공감이 갔습니다.
결정 보조 도구, 만능은 아니다
이런 어려움을 덜기 위해 개발된 것이 "결정 보조 도구(decision aid)"입니다. 환자가 각 선택지의 장단점을 비교하며 스스로 우선순위를 정리하도록 돕는 웹 기반 도구들이 여러 나라에서 시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네덜란드에서 진행된 무작위 대조군 연구는 다소 의외의 결과를 보여줍니다. 이미 양질의 다학제 표준 진료가 이루어지고 있는 환경에서는, 온라인 결정 보조 도구를 추가로 제공해도 표준 진료만 받은 군과 비교해 의사결정 갈등 수준에 유의한 차이가 없었습니다(평균 차이 −2.8, 95% 신뢰구간 −8.4~2.8).[4] 두 군 모두 이미 낮은 수준의 의사결정 갈등을 보였는데, 이는 진료 환경 자체가 이미 좋은 의사결정 지원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4]
유방암 검진 결정을 대상으로 한 여러 연구를 종합한 메타분석에서도 비슷한 결이 확인됩니다. 웹 기반 결정 보조 도구가 대체로 도움이 된다는 결론이지만, 연구마다 결과 편차가 커서 "어떤 상황에서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는 아직 정교하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으로 남아 있습니다.[6] 결정 보조 도구는 진료실 대화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화를 준비하는 보조 수단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환자가 실제로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가
그렇다면 환자들은 재건 방식을 고를 때 구체적으로 무엇을 우선시할까요. 미국에서 진행된 한 연구는 적응형 선택기반 컨조인트 분석이라는 방법으로 이를 정량화했습니다. 이 연구는 재건 후 최대 40%에 이르는 환자가 기대와 어긋난 결과로 인해 불만족을 겪는다는 점을 배경으로 제시하면서, 자가조직(피판) 재건을 선호하는 환자군과 보형물 재건을 선호하는 환자군이 서로 다른 속성—합병증 위험, 추가 수술 가능성, 회복 기간, 감촉과 외형 등—에 각기 다른 무게를 둔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5] 즉 "더 좋은 방법"이 정해져 있다기보다, 어떤 위험과 이득을 더 견딜 수 있는가에 대한 개인의 판단이 갈린다는 뜻입니다.
공유의사결정(shared decision-making)에 대한 선호 역시 사람마다 다릅니다. 미국 앨라배마의 두 대학병원에서 전이성 유방암 환자 95명을 조사한 연구에서는 44%가 의료진과 함께 결정하기를 원했고, 29%는 의료진 주도를, 27%는 본인 주도의 결정을 선호했습니다.[9] 어느 한 방식이 "옳다"기보다, 환자에게 먼저 선호를 물어보는 과정 자체가 필요하다는 점을 이 수치가 말해주는 듯합니다.
치료를 누가 정하기를 바라는가 — 물어보니 셋으로 갈렸다
미국 앨라배마의 두 대학병원에서 전이성 유방암 환자 95명에게 선호하는 결정 방식을 물은 결과.
44%가 가장 많다고 해서 «함께 정하는 것이 옳다»는 뜻이 아닙니다. 나머지 56%는 다른 방식을 원했습니다. 어느 한 방식이 표준이라기보다, 환자에게 먼저 선호를 물어보는 과정 자체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 수치가 보여 줍니다. 같은 연구에서 함께 결정하기를 원한 쪽은 대체로 대학 교육을 받았고 소득 수준이 더 높은 경향을 보였습니다.
출처: 본문에 실린 전이성 유방암 환자의 치료 결정과 재정 부담 연구 [9]
치료의 '가치'를 어떻게 잴 것인가
유럽에서는 여러 나라 의료기관이 함께 참여하는 VOICE 연구를 통해, 유방암 환자의 치료 경로에 따라 PRO 결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 연구는 국제 표준화 도구(ICHOM 표준 세트)를 이용해 진단 시점과 6개월 뒤 시점의 환자보고결과를 비교함으로써, 가치기반 의료(Value-Based Healthcare) 관점에서 치료 경로별 차이를 분석했습니다.[8] 치료가 잘 "듣는가"뿐 아니라, 그 치료가 환자의 삶에 어떤 값어치로 남는가를 함께 보려는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가치 판단에는 경제적 부담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같은 앨라배마 연구에서, 공유의사결정을 선호한 환자들은 대체로 대학 교육을 받았고 소득 수준이 더 높은 경향을 보였는데, 이는 재정적 여유가 치료 결정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지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9] 치료비 부담(financial toxicity)은 그 자체로 삶의 질을 갉아먹는 요인이면서, 동시에 환자가 어떤 결정을 "선택할 수 있는가"의 폭을 좁히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보호자로서 할 수 있는 일
이 문헌들을 읽으며 제가 얻은 결론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환자 중심 치료란 결국 진료실 밖에서 환자와 가족이 미리 생각을 정리해 가는 과정과 맞닿아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증상이 가장 견디기 힘든지, 어떤 결과를 가장 피하고 싶은지, 회복 기간이나 외형 중 무엇을 더 우선하는지를 말로 정리해 두면, 짧은 진료 시간 안에서도 의료진과 훨씬 구체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또한 결정을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리고 "표준적인 선택"이 곧 "나에게 맞는 선택"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문헌들이 거듭 확인해 주었습니다. 무엇이 확실히 입증된 것이고 무엇이 아직 연구가 진행 중인지 구분해서 받아들이는 태도가, 조급함 대신 저희 부부에게 남은 가장 실질적인 도움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환자보고결과(PRO)란 정확히 무엇인가요?
A. 환자가 스스로 느끼는 통증, 피로, 정서 상태, 신체 기능 등을 설문이나 문진을 통해 직접 보고하는 지표입니다. 의료진의 관찰이나 검사 수치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정보를 보완하는 역할을 하며, 최근에는 여러 대규모 임상시험 설계에도 포함되고 있습니다.[2]
Q. 결정 보조 도구는 꼭 사용해야 하나요?
A. 연구 결과를 보면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이미 다학제 진료 체계가 잘 갖추어진 환경에서는 도구를 추가해도 큰 차이가 없었다는 보고가 있고,[4] 반대로 검진 결정처럼 정보가 복잡한 상황에서는 도움이 되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6] 담당 의료진에게 사용 가능한 도구가 있는지 먼저 물어보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Q. 재건 여부는 수술 전에 반드시 정해야 하나요?
A. 즉시 재건과 지연 재건, 재건을 하지 않는 선택 모두 임상적으로 가능한 경로입니다. 다만 여러 연구에서 수술 후 모습에 대한 시각 자료나 정보 제공이 충분하지 않다는 아쉬움이 지적된 만큼,[10] 시간 여유가 있다면 자료를 충분히 찾아보고 의료진과 상의하는 과정이 도움이 됩니다.
Q. 치료비 부담이 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치료비 부담은 삶의 질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여러 연구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9] 치료 선택에 앞서 예상 비용과 지원 제도를 의료진, 사회복지사 등과 함께 미리 확인해 두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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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llebrand LE, et al. Significance of Patient-Reported Outcomes for Metastatic Breast Cancer Patients. Oncol Res Treat. 2022. doi:10.1159/000521826 — 원문 보기
- Knowles AJ. Advocating for Enhanced Patient Engagement in Breast Cancer Care: Impact of Residual Increased Lateral Adiposity and Consideration of the Pursuit of "Living Flat". Clin Breast Cancer. 2024. doi:10.1016/j.clbc.2024.01.003 — 원문 보기
- Jansen BAM, et al. Effectiveness of a patient decision aid for women considering post-mastectomy breast reconstruction: randomized controlled trial. Br J Surg. 2025. doi:10.1093/bjs/znaf151 — 원문 보기
- Shammas RL, et al. Patient Preferences for Postmastectomy Breast Reconstruction. JAMA Surg. 2023. doi:10.1001/jamasurg.2023.4432 — 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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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desoye T, et al. Patient-reported outcomes in older breast cancer survivors with and without prior chemotherapy treatment. Cancer Med. 2023. doi:10.1002/cam4.6394 — 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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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lackmore T, et al. Key factors in the decision-making process for mastectomy alone or breast reconstruction: A qualitative analysis. Breast. 2024. doi:10.1016/j.breast.2023.103600 — 원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