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항암 치료의 큰 고비를 넘기고 나면, 다음은 호르몬 치료라는 훨씬 긴 싸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주 듣게 되는 말 중 하나가 "난소 기능 억제(ovarian function suppression, OFS)"입니다. 처음 이 단어를 들었을 때는 단순히 폐경을 인위적으로 앞당기는 조치 정도로만 이해했는데, 관련 논문들을 하나씩 찾아 읽으면서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판단이 얽혀 있는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의료진이 아닌 보호자의 입장에서, 폐경 전 호르몬수용체 양성 유방암 환자에게 난소 기능 억제 요법이 왜 논의되는지, 어떤 임상시험 근거 위에 서 있는지, 그리고 아직 확실하지 않은 부분은 무엇인지를 정리한 공부 기록입니다. 진료 지침이 아니라, 진료실에서 담당 의료진과 더 구체적인 질문을 주고받기 위한 준비물에 가깝습니다.
난소 기능 억제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폐경 전 여성의 몸에서는 난소가 에스트로겐을 만들어냅니다. 호르몬수용체 양성 유방암은 이 에스트로겐을 연료 삼아 자라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에스트로겐 공급을 줄이는 것이 치료 전략의 핵심이 됩니다. 난소 기능 억제는 이 에스트로겐 생산 자체를 낮추는 방법으로, 크게 세 가지 방식이 쓰입니다. 매달 또는 몇 달에 한 번 주사하는 GnRH(성선자극호르몬 방출호르몬) 작용제로 난소를 일시적으로 잠재우는 방법, 수술로 양쪽 난소를 절제하는 방법, 그리고 방사선으로 난소 기능을 정지시키는 방법입니다. 이 중 GnRH 작용제 방식은 치료가 끝나면 난소 기능이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가장 널리 쓰입니다.
이 자체만으로도 재발 위험을 낮추는 효과가 보고되어 있지만, 실제 임상에서는 대개 단독으로 쓰이기보다 타목시펜이나 아로마타제 억제제 같은 다른 내분비 치료제와 함께 사용됩니다. 문제는 "누구에게, 어떤 약과 함께, 얼마나 오래" 써야 이득이 위험과 부담을 넘어서는가이고,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지난 20여 년간 여러 대형 임상시험이 진행되어 왔습니다.
왜 폐경 전 환자에게서 특히 논쟁적인가
폐경 후 여성의 경우 아로마타제 억제제가 타목시펜보다 재발 예방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은 비교적 일찍 정립된 사실입니다. 그런데 폐경 전 여성에게 아로마타제 억제제를 단독으로 쓰면 오히려 난소가 보상적으로 더 많은 에스트로겐을 만들어내면서 효과가 떨어지거나 무의미해질 수 있습니다. 즉 아로마타제 억제제라는 더 강력한 선택지를 폐경 전 환자에게 쓰려면, 먼저 난소 기능을 억제해서 몸을 사실상 폐경 후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동시에 항암화학요법 자체가 난소 기능을 손상시켜 조기 폐경을 유발하는 경우도 많아서, 난소 기능 억제는 재발 예방이라는 목적뿐 아니라 "항암 중 난소를 보호할 것인가"라는 완전히 다른 목적으로도 논의됩니다. 이 두 가지 맥락 — 보조 내분비 치료의 일부로서의 억제, 그리고 항암 중 난소 보호를 위한 억제 — 을 구분해서 읽는 것이 이 주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보조 내분비 치료로서의 근거 — SOFT·TEXT 임상시험
이 분야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근거는 국제유방암연구그룹이 진행한 SOFT와 TEXT라는 두 개의 대형 3상 임상시험입니다. SOFT 시험은 폐경 전 여성 3066명을 타목시펜 단독, 타목시펜과 난소 기능 억제 병용, 엑세메스탄(아로마타제 억제제)과 난소 기능 억제 병용 세 그룹으로 나누어 비교했습니다. 초기 결과에서는 전체 참가자를 통틀어 볼 때 타목시펜에 난소 기능 억제를 더한다고 해서 무병생존율이 뚜렷하게 개선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이전에 항암화학요법을 받고도 폐경 전 상태를 유지한 그룹, 즉 재발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은 그룹에서는 5년 무병생존율이 타목시펜 단독 78.0%였던 데 비해 타목시펜과 난소 기능 억제 병용에서 82.5%로 더 높게 나타났습니다.[7]
이후 8년, 12년 추적 결과가 이어지면서 이 경향은 더 뚜렷해졌습니다. 8년 시점 무병생존율은 타목시펜 단독 78.9%, 타목시펜과 난소 기능 억제 병용 83.2%, 엑세메스탄과 난소 기능 억제 병용 85.9%로 보고되었고, 연구진은 특히 35세 미만의 젊은 환자, 그리고 저위험 임상병리학적 특성을 가진 환자를 구분해 치료를 조정할 것을 제안했습니다.[10] 12년 추적에서는 원격 재발 없이 생존한 비율이 타목시펜 단독 84.8%, 타목시펜과 난소 기능 억제 병용 86.2%, 엑세메스탄과 난소 기능 억제 병용 87.8%로 나타났고, 무엇보다 애초 재발 위험이 높았던 하위 그룹에서 전체 생존율 자체의 절대적인 개선(연구진 발표 기준 약 4%포인트)이 관찰되었다는 점이 의미가 있었습니다.[8] 즉 이 요법의 이득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고 위험도가 높은 환자일수록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양상입니다.
아로마타제 억제제와 병용했을 때의 차이
SOFT와 TEXT의 통합 분석은 같은 난소 기능 억제 위에서 타목시펜을 쓸지, 엑세메스탄을 쓸지를 직접 비교한 자료이기도 합니다. 중앙값 9년 추적 결과 엑세메스탄과 난소 기능 억제 병용이 타목시펜과 난소 기능 억제 병용보다 무병생존율과 원격 재발 없는 기간을 유의하게 개선시켰지만, 전체 생존율에서는 그 시점까지 유의한 차이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13년까지 추적을 연장한 최신 분석에서는 12년 시점 무병생존율의 절대 차이가 4.6%포인트(위험비 0.79), 원격 재발 없는 기간의 절대 차이가 1.8%포인트(위험비 0.83)로 나타났고, 전체 생존율은 여전히 유의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6]
여기서 그치지 않고, 조기유방암시험자협력그룹(EBCTCG)은 난소 기능 억제를 받은 폐경 전 여성 7030명의 개인 수준 자료를 모아 아로마타제 억제제와 타목시펜을 비교하는 별도의 메타분석을 발표했습니다. 그 결과 아로마타제 억제제 쪽에서 재발 위험이 약 5분의 1가량 줄었고, 5년 및 10년 시점의 절대적인 재발률 차이는 약 3%포인트로 나타났습니다. 이 효과는 35세 미만의 젊은 환자에서도 그보다 나이 많은 환자와 비슷한 크기로 나타났다는 점이 특기할 만합니다. 다만 이 메타분석에서도 유방암 사망률 자체의 차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더 긴 추적 관찰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1]
항암화학요법 중 난소를 보호하려는 목적의 억제
지금까지의 내용이 "재발 예방을 위해 난소 기능을 억제하는 것"이었다면, 완전히 다른 맥락도 있습니다. 항암화학요법 자체가 난소를 손상시켜 조기 폐경이나 불임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항암 기간 동안 GnRH 작용제로 난소를 일시적으로 보호하려는 시도입니다. 마테오 람베르티니 연구팀이 다섯 개 무작위 임상시험의 개인 환자 자료를 모아 진행한 메타분석에 따르면, 항암 중 GnRH 작용제를 함께 투여한 그룹에서는 조기 난소 기능부전이 14.1%에서 발생한 반면 대조군에서는 30.9%에서 발생해, 상대적인 위험이 뚜렷하게 낮아졌습니다. 이 효과는 진단 당시 나이, 호르몬수용체 상태, 항암 요법의 종류와 무관하게 비교적 일관되게 나타났습니다. 치료 후 임신 비율 역시 GnRH 작용제 그룹에서 10.3%, 대조군에서 5.5%로 더 높게 보고되었고, 무병생존율과 전체 생존율은 두 그룹 사이에 유의한 차이가 없었습니다.[2]
즉 항암 중 난소 보호 목적의 일시적 억제는 재발 위험을 높이지 않으면서 난소 기능과 이후의 임신 가능성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근거가 비교적 일관되게 쌓여 있는 영역입니다.
항암 이후 다시 시작하는 경우 — ASTRRA 시험
또 하나 자주 나오는 질문은 "항암을 이미 마쳤고 여전히 폐경 전 상태이거나 월경이 돌아왔다면, 그때부터라도 난소 기능 억제를 시작하는 의미가 있는가"입니다. 한국유방암학회가 주도한 ASTRRA 시험은 바로 이 상황을 다룬 연구입니다. 항암화학요법을 마친 뒤 폐경 전 상태를 유지하거나 월경이 다시 시작된 환자들을 타목시펜 단독군과 타목시펜에 2년간 난소 기능 억제를 더한 군으로 나누어 비교했습니다. 중앙값 106개월(약 9년에 가까운) 추적 결과, 8년 시점 무병생존율은 타목시펜 단독군 80.2%, 병용군 85.4%로 병용군에서 더 높게 유지되었고(위험비 0.67), 전체 생존율에서는 두 군 사이에 유의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96.5% 대 95.3%).[9]
이 결과는 항암 시점에 이미 지나버린 기회가 아니라, 항암 이후에도 난소 기능 억제를 새로 시작하는 것이 의미 있는 선택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다만 이 시험에서 억제 기간은 2년으로 설계되었다는 점도 함께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부작용과 장기적인 영향
난소 기능 억제는 본질적으로 인위적인 폐경을 만드는 조치이기 때문에, 폐경기 여성들이 겪는 증상들을 그대로, 때로는 더 이른 나이에 겪게 됩니다. 제노바 대학 연구팀의 최근 종설은 안면홍조, 우울감, 인지 기능 저하, 골다공증, 성기능 장애, 체중 증가 등을 이 요법과 관련된 대표적인 부작용으로 정리하면서, 이러한 증상들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면 삶의 질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5] 이 부분은 재발 위험을 낮추는 이득과 별개로, 치료를 지속하는 동안 계속 관리해 나가야 하는 현실적인 과제입니다.
아직 논쟁이 남아 있는 지점
모든 연구자가 난소 기능 억제의 이득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2017년 발표된 한 비평 논문은 당시 SOFT 시험의 추적 기간이 유방암처럼 재발이 오래 지속되는 질환을 평가하기에는 충분히 길지 않았고, 평가 지표로 유방암 재발 자체보다 원격 전이나 전체 사망을 우선했어야 한다는 방법론적 우려를 제기했습니다. 특히 항암으로 이미 난소 기능이 상당 부분 소실된 환자에게 억제제를 추가하는 것이 실제로 얼마나 더 이득이 되는지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3] 이후 발표된 여러 임상시험의 장기 추적 결과들이 이러한 우려에 상당 부분 답을 내놓기는 했지만, 어떤 환자군에서 이득이 가장 크고 어떤 환자군에서는 부작용 부담이 이득을 넘어서는지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한편 여러 무작위 시험 결과를 통합한 메타분석에서는 타목시펜에 난소 기능 억제를 더하는 것이 재발 또는 사망 위험을 12%, 사망 위험을 13% 낮추는 것으로 나타나 전반적으로는 이득 쪽에 무게가 실려 있습니다.[4] 결국 지금까지의 근거를 종합하면 "모든 폐경 전 환자에게 일률적으로 권할 치료"라기보다는, 나이와 재발 위험도, 항암 여부, 부작용을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함께 고려해 담당 의료진과 조율해 나가야 하는 치료라는 쪽으로 무게가 실립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난소 기능 억제는 모든 폐경 전 유방암 환자에게 필요한가요?
아닙니다. SOFT 시험에서도 항암화학요법 없이 저위험군으로 분류된 환자들은 타목시펜 단독으로도 좋은 결과를 보였습니다.[10] 이득의 크기는 재발 위험도에 따라 달라지므로, 개별 환자의 병기와 특성을 바탕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Q. 항암 중에 받는 난소 보호 목적의 억제와, 항암 후 재발 예방 목적의 억제는 같은 건가요?
목적이 다릅니다. 항암 중 억제는 난소 기능과 향후 임신 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고,[2] 항암 후(또는 항암 없이) 하는 억제는 타목시펜이나 아로마타제 억제제와 함께 재발 위험 자체를 낮추기 위한 것입니다.[7][8]
Q. 난소 기능 억제를 얼마나 오래 지속해야 하나요?
연구마다 기간 설계가 다릅니다. SOFT·TEXT 계열 연구들은 5년을 기준으로 했고, ASTRRA 시험은 2년 억제 후에도 지속적인 이득을 보고했습니다.[9] 기간은 위험도와 부작용 부담을 함께 고려해 담당 의료진과 정할 문제입니다.
Q. 부작용이 심하면 중단해도 되나요?
이 글에서 다룬 근거들은 치료의 지속 여부를 권고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논의를 위한 배경 정보입니다. 증상의 정도와 중단 여부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해야 할 사항입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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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ancis PA, et al. Tailoring Adjuvant Endocrine Therapy for Premenopausal Breast Cancer. N Engl J Med. 2018. doi:10.1056/NEJMoa1803164 — PubMed